16일 시행 앞둔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 이끈 박원아 고용부 서기관
사시 합격 후 노동법에 관심 공직 입문법안 설계부터 의원 설득까지 직접 나서
“우리의 조직 문화 돌아보는 계기 될 것”
박원아 고용노동부 근로기준정책과 서기관이 9일 고용부 세종청사에서 서울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박 서기관은 오는 16일 시행하는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 관련 업무를 도맡았다.
고용노동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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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정부세종청사에서 만난 박원아(38) 고용노동부 근로기준정책과 서기관은 국회로 올라가는 열차에서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통과되게 해주세요’라고 간절히 기도하던 지난겨울을 떠올렸다. 제도 설계부터 가이드라인 제작까지 직장 내 괴롭힘 관련 실무를 도맡은 박 서기관은 “‘법안의 무덤’인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제2소위원회에서 쓸쓸히 잠자던 법이 ‘역주행’한 것은 기적”이라고 뿌듯해했다.
지난해 세상을 경악하게 만든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의 ‘막장 갑질’이 법안 통과의 원동력(!)이 됐다. 박 서기관은 “양진호는 법이 통과될 수 있도록 도와준 일등 공신이다. 감사하다는 말을 해야 할 것 같다”고 농담했다.
‘직장에서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하는 행위.’ 근로기준법상 직장 내 괴롭힘의 정의다. 괴롭힘이라는 모호한 개념을 명확한 법 체계로 들여온 것인데 매우 실험적이고 독특하다고 평가된다.
한국보다 먼저 직장 내 괴롭힘을 법제화한 나라는 프랑스, 호주, 핀란드 정도. 박 서기관은 “국내에서 괴롭힘을 법으로 규정하는 것이 필요한지 제대로 된 논의가 없었지만 갑질이 사회적 이슈가 되자 분위기가 변했다”면서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생각에 매일 국회 법사위 의원실을 찾아 간곡히 설득했다”고 전했다.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사법연수원(39기)을 수료한 박 서기관은 판검사 대신 고용부 공무원의 길을 선택했다. 변호사 특별채용으로 고용부에 들어와 3년 전부터 근로기준 업무를 담당했다. 그는 “노동법은 인간관계에 관심을 두는 ‘따뜻한 사람들’이 공부하는 분야”라면서 “앞으로도 계속 공부하겠다는 마음으로 뛰어들었다”고 전했다. 인간이 맺는 관계의 문제를 다루는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에 박 서기관이 특별한 애착을 갖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난해 간신히 국회의 문턱을 넘은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오는 16일 시행된다. 겪은 적 없는 새로운 법에 혼란스러운 것은 노사가 마찬가지. 노동자는 ‘가해자를 직접 처벌하는 조항이 없다’고, 사업주는 ‘괴롭힘이 모호하다’고 따진다. 박 서기관은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가지는 한계를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다고 동의했다. “첫술에 배부를 수 있냐”고 반문한 그는 “법 시행을 계기로 사회적으로 관심이 이어지다 보면 노사가 우려하는 부분이 개선되고 잘못된 조직문화도 바뀔 것”이라며 “모두가 더 나은 환경에서 행복하게 일하도록 하는 것이 법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말했다.
세종 오경진 기자 oh3@seoul.co.kr
2019-07-10 3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