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당 “우아한 2차 가해”…의도적 회피
시민단체 “사용 말아 달라” 인권위 진정
서울대 ‘담배 성폭력’ 사건 때 처음 등장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10일 오전 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조문을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0.7.10 연합뉴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지난 15일 박 전 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 등 민주당 내 연이은 성폭력 의혹과 관련해 “피해 호소인이 겪는 고통에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리며 이런 상황에 대해 민주당 대표로 다시 한번 통절한 사과를 말씀드린다”고 말했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도 지난 10일 박 전 시장 빈소 조문을 마친 뒤 “피해 호소인에 대한 신상털기는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청와대와 박 전 시장의 장례위원회, 한국여기자회 역시 이번 사건과 관련한 입장을 밝히며 고소인을 ‘피해 호소인’이라고 지칭했다.
이 밖에 변형된 표현도 등장했는데 15일 민주당 이낙연 의원은 ‘피해 고소인’이라 불렀다. 서울시는 같은 날 입장 발표를 하면서 ‘피해호소 직원’이라는 용어를 썼다. 서울시는 피해 사실이 내부에 접수되고 조사 등이 진행돼야 ‘피해자’라고 부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고 박원순 서울시장을 성추행 등 혐의로 고소한 피해자를 대리하는 김재련 변호사가 13일 오후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 고미경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 김 변호사. 연합뉴스
일각에서는 정치권이 양분된 여론을 의식해 부담감을 덜고자 의도적으로 ‘피해 호소인’이라는 모호한 표현을 쓰고 있다고 지적한다.
미래통합당 김은혜 대변인은 논평에서 “민주당이 피해자를 피해자라 부르고 싶지 않아 집단 창작을 시작했다”며 “의혹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우아한 2차 가해’”라고 비판했다.
홍성수 숙명여대 교수는 15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형사절차상 주의해야 하는 것은 범죄자(가해자)를 확정 판결 전에 유죄추정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며 “피해자를 피해자라고 부르는 것에 주의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썼다.
‘법치주의바로세우기행동연대’는 고소인을 피해 호소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성추행 피해를 부정하는 2차 가해라며 이 용어를 사용하지 말 것을 권고해 달라는 진정을 국가인권위원회에 제기했다.
‘피해호소인’이라는 용어는 2011년 서울대에서 발생한 이른바 ‘담배 성폭력’ 사건을 두고 학생들이 논쟁하는 과정에서 처음 등장한 용어다. 당시 학생들은 피해와 가해 여부를 단정하지 않기 위해 ‘피해 호소인’과 ‘가해 지목인’ 등 중립적 용어를 사용했다.
곽혜진 기자 demian@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