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신] ‘응급실 뺑뺑이’가 전문성 없는 소방대원 탓이라고요?

[추신] ‘응급실 뺑뺑이’가 전문성 없는 소방대원 탓이라고요?

강주리 기자
강주리 기자
입력 2023-12-09 10:00
수정 2023-12-09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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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봉식 의사협회 원장의 ‘119구급대원 전문성 폄하’ 발언에 소방청 반박

<편집자주> ‘추가로 신문에 내주세요’를 줄인 ‘추신’은 편지의 끝에 꼭 하고 싶은 말을 쓰듯 주중 지면에 실리지 못했지만 할 말 있는 취재원들의 이야기를 담습니다.
우 “전문성 없는 소방대원이 응급환자
대형병원에만 보내 응급실 뺑뺑이 생겨”
‘119’로 전화 일원화도 뺑뺑이 원인 지목
구급대원 87% 간호사·응급구조사 면허
소방 “응급실 내원 환자 84% 119 무관”
“응급실 과밀화, 소방에 책임전가 안돼”
구급대원 업무범위 확대법 8일 국회 통과
중증환자에 약물투여 등 신속 처치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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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환자는 신속히’
‘응급환자는 신속히’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화재대피 민방위 훈련에서 구급대원들이 응급환자 이송 훈련을 하고 있다. 2023.11.1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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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구급차 자료사진. 뉴시스
119구급차 자료사진. 뉴시스
119구급대원들이 화가 났습니다. 이유는 지난 6일 우봉식 대한의사협회(의협) 의료정책연구원장이 의협 계간 ‘의료정책포럼’에 쓴 시론 때문인데요.

우 원장은 ‘응급실 뺑뺑이’ 등 필수의료 공백의 대표적 현상에 대해 “전문성이 없는 소방대원이 응급환자를 대형병원으로만 보내니 경증 환자가 응급실 내원 환자의 90% 가까이 차지하게 돼 중증 환자가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는 ‘뺑뺑이’가 생긴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정부가 추진하는 의대 입학 정원 증원 등 필수의료 혁신방안의 진단이 잘못됐다고 비판하면서도 말이죠. 우 원장은 “응급실 뺑뺑이가 과거 우리나라에 응급환자 분류·후송을 담당하는 ‘1339 응급콜’이 법 개정에 따라 119로 통폐합되면서 생긴 일”이라고도 했습니다.

한 마디로 국민 편의를 위해 정부가 응급 번호를 ‘119’로 통일하다보니 의료 지식도 없는 소방대원들이 응급환자들을 죄다 대형병원으로 데려와 의사들이 손이 부족하다보니 결국 다른 병원으로 보내는 뺑뺑이가 생겼다는 겁니다.

소방청은 단단히 기분이 상했습니다. 의사들만큼은 아닐지 몰라도 위기의 현장에 누구보다 빨리 도착해 응급 처치를 하고 응급환자를 5단계로 평가·분류해 치료 가능한 적정 병원으로 이송하는 역할을 하는 이들은 간호사와 1급 응급구조사 등의 자격·면허증을 갖춘 119구급대의 전문구급대원들이기 때문입니다.

소방청이 배포한 자료에 따르면 전체 구급대원(1만 4201명) 중 87%인 1만 2281명이 간호사(4361명) 면허 소지자, 1급 응급구조사(5447명), 2급 응급구조사(2473명) 자격자들입니다. 환자 상태를 판단하지 못할 만큼 전문성이 없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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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서부소방, 119안전체험 한마당
광주 서부소방, 119안전체험 한마당 광주 서부소방서는 1일 체험형 소방안전교육 ‘119안전체험 한마당’ 캠페인을 했다고 밝혔다. 관내 한 아파트 광장에서 열렸고, 응급처치 교육을 통해 소방 안전의식을 함양하기 위해 마련됐다. 주요 내용은 주택용 소방시설·부주의 화재 예방법 등 홍보와 심폐소생술·응급처치 등 교육으로 구성됐다. 노점례 서부소방서장은 “수시로 캠페인을 열어 시민들의 눈높이에 맞는 소방법·안전법을 교육·홍보하겠다”고 말했다. 사진은 이날 열린 캠페인의 모습. 2023.12.1 광주 서부소방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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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급차 이미지. 연합뉴스
구급차 이미지.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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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 관련 사진. 연합뉴스
응급실 관련 사진. 연합뉴스
응급실 내원환자 16%만
119구급대 이용했는데
응급실 뺑뺑이 소방 탓이라니
더욱이 병원 응급실 내원 환자의 80% 이상은 119구급대를 이용하지 않는다는 자료도 공개했습니다. 소방대원들이 실어나른 ‘덜 급한’ 환자들 때문에 응급실이 만실이 돼서 병원 측이 진료를 거부할 수밖에 없다는 우 원장의 주장은 통계상으로 볼 때 말이 안 된다는 얘기인 것이죠.

소방청은 2021년 7월 보건복지부와 서울대병원의 ‘구급차 관리·감독 방안연구’에서 2018~2019년 응급실 내원환자(1832만 1452명) 중 119구급대를 이용한 비율은 16.4%(약 300만 7989명)로 83.6%의 환자는 자차, 의료기관 기타 구급차 등 다른 수단을 통해 내원한다고 밝혔습니다.

특히 119와 1339의 통합은 응급환자 발생했을 때 이원화된 응급의료 신고전화로 국민에게 줄 수 있는 혼선을 방지하고 신속한 대응을 위해 2011년 12월 6일 국정현안조정회의에서 결정된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또 과거 1339의 주요업무는 응급환자 분류·후송이 아니라 안내·상담, 의료지도, 응급의료기관 평가 지원, 정보관리 제공이었다고 지적했습니다. 일원화되기 전인 2010년 4월에는 1339에 전화로 도움을 요청했던 대구 4살 장중첩증 환자가 5개 병원 응급실을 표류하다 숨진 사례를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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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특별자치도 소방본부 제공
강원특별자치도 소방본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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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EX 전시장 안전사고 대응 위해 근무 중인 구급대원
ADEX 전시장 안전사고 대응 위해 근무 중인 구급대원 22일 오전 경기 성남 서울공항에서 열린 국제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 ‘서울 ADEX 2023’에서 119 구급대원들이 근무하고 있다. 2023.10.22 연합뉴스
응급실 과밀화 원인부터 해소해야
‘병원 전 중증도 분류체계’ 내년 도입
소방청은 우 원장이 ‘전문성 없는 소방대원’ 탓을 한 응급실 뺑뺑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먼저 응급실의 과밀화 원인을 해소하고 119구급대가 이송하는 응급환자 수용률을 높이기 위해 걸어오는 환자(워크인)의 응급실 이용을 자제하는 등의 조치가 우선돼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근본적인 병원 내 응급실 과밀이나 선호도가 떨어지는 응급실 근무 의사 부족 문제는 해결하지 않고 전문 구급대원들이 이송해오는 ‘진짜 응급환자’들을 밖으로 내몰면서 전문성을 운운하는 것은 전형적인 책임회피라는 것이죠.

소방청은 내년부터 현장과 병원의 응급환자 분류체계를 일치시키고 119구급대가 응급환자를 증상별로 적절한 치료가 가능한 병원으로 분산 이송해 환자 수용 거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병원 전 중증도 분류체계’(Pre-KTAS)를 도입해 전국으로 점차 확대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Pre-KTAS는 1~5단계(1단계 소생, 2단계 긴급, 3단계 응급, 4단계 준응급, 5단계 비응급)로 구분하는데 15분 이내 진료를 해야 하는 심각 수준인 1·2단계는 대형병원, 1시간 이상 대기가 가능한 4·5단계는 중소병원으로 분류하는 것으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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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 출동한 소방관들이 광역버스에서 다친 사람들을 구조하고 있다. 인천소방본부 제공.
긴급 출동한 소방관들이 광역버스에서 다친 사람들을 구조하고 있다. 인천소방본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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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강원 속초시 설악동 식당 앞에서 주차 중이던 차량이 식사 중이던 일행을 덮쳐 1명이 숨지고 3명이 중경상을 입은 가운데 119 구급대원이 환자를 긴급 이송하고 있다. 사진 강원특별자치도소방본부 제공
8일 강원 속초시 설악동 식당 앞에서 주차 중이던 차량이 식사 중이던 일행을 덮쳐 1명이 숨지고 3명이 중경상을 입은 가운데 119 구급대원이 환자를 긴급 이송하고 있다. 사진 강원특별자치도소방본부 제공
119구급대원 중증환자 응급처치 허용
업무범위 확대 119구조·구급법 통과
“전문성 비해 업무범위 매우 제한 풀어”
한편 8일 국회 본회의에서는 119구급대원들이 현장에서 중증환자들에게 약물 투여 등 신속한 응급처치를 할 수 있도록 업무범위를 확대하는 내용의 ‘119구조·구급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통과됐습니다.

그동안 응급구조사 자격자과 간호사 면허 소지자들로 119구급대원들이 구성돼있음에도 전문성에 비해 법적 업무범위가 매우 제한적이어서 현장에서 꼭 필요한 응급처치를 하는데 큰 장애로 지적돼왔습니다.

이번 법 개정으로 구급대원들의 약물 투여 등 현장에서 전문 응급처치가 가능하게 되면서 연간 40만명에 달하는 중증환자들이 혜택을 받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심정지·심혈관·뇌혈관·중증외상 등 4대 중증 환자의 이송현황은 2018년 24만명, 2019년 27만명, 2021년 31만명, 지난해에는 40만명을 넘었습니다. 김조일 소방청 119대응국장은 “앞으로 구급대원들에 대한 전문 응급처치 교육을 강화하고 체계적인 구급 품질관리를 통해 국민의 생명 보호를 위한 고품질의 구급서비스로 보답하겠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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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29일 밤,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일대에 핼러윈을 맞아 인파가 몰려 참사가 발생한 가운데 다음날인 30일 새벽 현장에 급파된 119 구급대원들이 희생자 구조 활동을 하고 있다. 경찰은 사고 발생 직후 전담 수사본부를 구성해 이태원 일대 업소들과 관계당국이 안전조치 의무를 다했는지 등 구체적인 사고 원인 규명에 나섰다. 연합뉴스
2022년 10월 29일 밤,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일대에 핼러윈을 맞아 인파가 몰려 참사가 발생한 가운데 다음날인 30일 새벽 현장에 급파된 119 구급대원들이 희생자 구조 활동을 하고 있다. 경찰은 사고 발생 직후 전담 수사본부를 구성해 이태원 일대 업소들과 관계당국이 안전조치 의무를 다했는지 등 구체적인 사고 원인 규명에 나섰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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