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10주기…단원고 37명의 유품 첫 공개
‘나부끼는 노란리본’ 세월호 참사 10주기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하루 앞둔 15일 전남 목포신항에 노란 리본이 나부끼고 있다.
목포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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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고 학생 37명의 가족은 그렇게 보관해 왔던 희생자들의 생전 물품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서울신문은 15일 세월호 참사 10주기 기억물품 특별전 ‘회억정원’이 열리는 안산문화예술의전당에서 3명의 가족을 만나 그들의 버팀목이 되어준 아이들의 물건을 통해 지난 10년을 돌아봤다.
한번 밖에 쓰지 못한 경빈이의 면도기
2학년 4반 임경빈 학생의 면도기
다음달 5일까지 경기 안산 안산문화예술의전당에서는 단원고 2학년 학생 37명이 사용했던 물품이 전시되는 세월호 참사 10주기 기억물품 특별전 ‘회억정원’이 열린다. 사진은 임경빈 학생이 남긴 면도기
도준석 전문기자
도준석 전문기자
전씨가 참사 직후 안방과 거실, 화장실에서 경빈이의 흔적을 찾아모은 것도 조금이라도 더 오래 기억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때 찾은 면도기는 10년이 지난 지금도 간직하고 있다. 수학여행을 가기 전 TV를 보던 경빈이는 아빠에게 “나도 면도를 해야 해”라고 물었다. 수염이 아직 자라지 않았던 경빈이의 얼굴을 본 남편이 망설이자 전씨는 “아빠가 가르쳐주면 되겠네”라고 했다. 아빠를 따라 거품을 바르며 웃는 경빈이의 모습이 행복해 보였다고 전씨는 회상했다. 그 후로 경빈이는 이 면도기를 쓰지 못했다.
목포신항부터 광화문 광장까지
엄마는 아들 위해 싸우고 연대했다
임경빈군의 면도기와 어머니 전인숙씨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2학년 4반 임경빈 학생의 면도기를 지난 4일 경기 안산 안산문화예술의전당에서 엄마 전인숙씨가 들고 바라보고 있다.
도준석 전문기자
도준석 전문기자
“이렇게 오래 싸워야 할 줄 몰랐다”는 전씨는 경빈이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 버티고 또 버텼다. ‘내 아이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거리로 나왔다’며 시간을 쪼개 힘을 보내주는 이들을 만나다 보니 다른 참사 피해자들과도 연대하게 됐다. 노동자가 일하다 죽었을 때, 스텔라데이지호 참사 피해자나 장애인부모연대 소속 부모들이 거리로 나설 때면 곁에 있었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의 분향소도 지켰다.
경빈이와 같은 반 엄마들이 경빈이의 동생을 돌봐준 덕분에 전국 곳곳을 다닐 수 있었다. 단원고 4·16 기억교실에선 세월호 참사의 의미를 알리는 활동도 이어가고 있다. 전씨는 “참사 이후에 선박안전법 등도 개정됐고 안전의식도 조금은 나아졌지만, 아직도 바뀌어야 할 게 많다”며 “이런 참사가 다시 발생하지 않아야 아이들의 명예 회복이 이뤄지는 게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요리사 꿈꾸던 태민이의 첫 프라이팬
이태민 학생의 프라이팬
다음달 5일까지 경기 안산 안산문화예술의전당에서는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맞아 기억물품 특별전 ‘회억정원’을 열고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2학년 학생들이 참사 이전에 사용했던 물품이 전시된다. 사진은 요리사를 꿈꾸던 이태민 학생이 처음 사용한 프라이팬.
오장환 기자
오장환 기자
고1 때부터 요리학원에 다닌 태민이는 곧바로 한식 자격증을 땄다. 어느날 문씨와 함께 마트에 간 태민이는 머뭇거리면서 “프라이팬을 사도 되느냐”고 물었다. 음식 만드는 연습 하느라 바닥이 군데군데 긁힌 프라이팬을 쓰다 겨우 말을 꺼낸 거였다. 태민이에게 새 프라이팬을 사준 뒤 문씨는 태민이가 원래 쓰던 프라이팬을 줄곧 간직해왔다. 꿈을 위해 노력하는 태민이의 모습이 대견하기도 하고, 마음껏 지원해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컸는데, 그 마음을 담아두고 싶어서였다.
어느덧 태민이만큼 자란 막내
“사랑하는 마음도 전해지길”
이태민 학생의 프라이팬과 엄마 문연옥씨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2학년 6반 이태민 학생의 어머니 문연옥씨가 지난 2일 경기 안산 안산문화예술의전당에서 태민군이 쓰던 프라이팬을 바라보고 있다.
오장환 기자
오장환 기자
오랫동안 하던 미용실 일도 그만뒀다. 문씨는 “처음엔 태민이 또래의 아이들 머리를 만지면 마음이 아플 것 같았다”면서 “손님들이 갑자기 세월호 참사 이야기를 꺼내면 대처를 못 할까 두려운 마음도 컸다”고 전했다.
요즘은 4·16공방에서 활동하면서 위안을 얻는다. 유가족들을 위로하러 찾아온 자원봉사자로부터 자수 등을 배웠던 엄마들과 함께 ‘나를 잊지 말아요’라는 꽃말의 노란색 팬지를 심기도 한다. 참사 이후 5~6년 동안은 아이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노력한 문씨는 안전한 사회를 위해 다시 힘을 내보겠다고 다짐했다.
“우리가 간직한 물건들은 우리에게는 아이들 그 자체에요. 이제는 세상에 없는 아이가 보고 싶을 때마다 그 물건들을 꺼내 보고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겠어요. 세월호의 아픔만 기억하는 게 아니라 아이들을 사랑했던 부모의 마음도 기억해줬으면 합니다.”
은정이가 엄마에게 보낸 마지막 생일 편지
조은정 학생의 부반장 임명장
2학년 9반 조은정 학생 엄마 박정화씨가 딸이 받은 부반장 임명장과 성적표 위에 손을 얹고 있다. 박씨는 늘 은정양의 이름이 새겨진 반지를 끼고 있다.
오장환 기자
오장환 기자
“엄마, 식당 일하느라 마음도 아프고 몸도 쑤실 텐데 집에 와서 또 집안일 해야 하니까 힘들지?…(중략)…나중에 취직하면 첫 월급으로 엄마한테 명품 가방 사줄게. 효녀 은정이가.”
은정이는 늘 엄마와 아빠가 먼저였다. 약사가 되어 자신은 약국을 열고 엄마는 같은 건물에 미용실을 차려주겠다던 은정이는 만족스럽지 않은 성적표를 받으면 ‘미안하다’고 말하는 아이였다. 주말이면 식당 일을 도왔다. 장사가 어려워지자 걱정을 끼치지 않으려 몰래 장학금을 신청하기도 했다. 책임감이 강한 은정이는 고2 땐 부반장이 됐다.
안산 떠났다 은정이 찾아 돌아온 엄마
봉사로 위안…“생명안전공원에서 기억하길”
조은정 학생의 편지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2학년 9반 조은정 학생의 엄마 박정화씨가 지난 2일 경기 안산 안산문화예술의전당에서 은정양이 엄마의 생일을 축하하며 쓴 편지를 들고 서 있다.
오장환 기자
오장환 기자
박씨는 2018년부터는 가족들과 봉사 활동을 시작했다. 2018년 5월 안산 화랑유원지에 있던 세월호 희생자 합동분향소가 철거된 이후 “이제는 우리가 고마운 사람들을 찾아갈 때”라고 생각해서였다. 공원을 걸으면서 쓰레기를 줍는 플로깅을 하고, 수해 현장 등 곳곳을 가다 보면 세월호 참사 때 자원봉사자로 마주쳤던 이들을 만나기도 했다.
박씨는 인터뷰 중간중간 은정이가 박씨에게 썼던 편지와 학교에서 받았던 상장과 2학년 부반장 임명장이 전시된 곳을 연신 바라봤다. “더 안전한 사회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는데 나이가 들면서 은정이의 추억들이 잊힌다. 우리가 죽더라도 다음 세대들이 생명안전공원에 보관될 이 물건들을 보고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