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광복 79주년… 이태룡 인천대 독립운동사연구소장 인터뷰
‘의병 문학’ 전공한 교사 출신독립운동가 7035명 포상 신청
“기록 없어 포상 반려 안타까워
죽는 날까지 남은 유공자 발굴”
광복절을 이틀 앞둔 지난 13일 인천대 독립운동사연구소에서 만난 이태룡 소장이 독립운동가 포상 신청서를 펼쳐 둔 채 신청 절차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79주년 광복절을 이틀 앞둔 지난 13일 찾은 이 소장의 연구소. 책상 한쪽엔 포상 신청 관련 서류와 후손들이 보낸 독립운동가의 공적 자료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독립운동가의 후손 개인이 이런 자료를 준비해 포상을 신청하기는 쉽지 않은 터라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이 소장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문의가 쇄도한다.
그간 1400명 넘는 이들이 독립운동 행적을 인정받았지만 이 소장은 자신이 하는 일은 대단한 일이 아니라고 몇 번이나 강조했다. 그는 “보람을 느끼려고 하는 일이 아니다. 나라를 위해 몸과 마음을 모두 바친 사람들을 누군가는 찾아내서 그 흔적을 인정받도록 해야 한다. 그 일이 이번 생에 저에게 주어진 책무”라고 했다. 왜 이렇게 의병 관련 연구에 매진하는지를 묻자 그는 “1907년 의병으로 활동했던 5촌 당숙의 이야기를 내내 듣고 자랐던 영향도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인정받지 못한 독립운동가들에게 항상 더 마음이 쓰인다”고 강조했다. 반일 활동을 한 독립운동가는 체포되거나 고문을 당했어도 정확한 사유나 활동에 대한 기록이 없는 경우가 많다. 이에 포상을 신청해도 ‘적극적인 독립 활동 의지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 ‘기록이 부족하다’는 등의 이유로 반려될 때가 적지 않다.
그는 특히 네 번이나 포상을 신청했던 고완남(1920~1991) 선생에 대해 “항일 결사 ‘조선학생동지회’에 참여했다 일본 경찰에 발각돼 함흥형무소에서 모진 고문을 당한 분이지만 기소유예가 돼 재판을 받지 않았다”며 “기록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포상 신청이 반려되고 있다”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처음 독립운동가 포상 신청을 한 건 2008년이었다. 그는 그동안 연구했던 자료를 모아 ‘순국했거나 3년 이상의 징역을 받았지만 포상을 받지 못한 828명의 자료’를 13권의 책으로 만들었고 당시 국가보훈처(현 국가보훈부)에 이 책을 보냈다. 2013년 교직에서 물러난 이후 2019년 독립운동사연구소장으로 부임하기 전까지는 홀로 독립운동가를 발굴해 포상 신청을 이어 왔다.
17년 동안 줄기차게 이 길을 걸었는데도 후회가 남아 있을까. 그는 “아직도 인정받아야 할 분들이 많이 남아 있다”며 “내 나이가 70세가 다 돼서, 예전처럼 이 일을 할 수 없게 될까 봐 그게 아쉬울 뿐”이라고 답했다. 71세가 되는 2년 뒤면 연구소장에서 물러날 예정인 그는 “그동안 연구했던 독립운동가들의 자료를 정리해 모두 포상 신청을 하는 게 남은 2년 동안의 목표”라고 했다. 이어 “연구소장에서 물러나도 이 일을 그만둘 생각은 없다. 함께하는 사람이 없어 지금보다는 더디겠지만 아마 죽는 날까지도 이 일을 하고 있지 않겠나”라며 웃었다.
2024-08-15 1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