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잘못이야” → “나 화났어” 내 마음을 표현하게 됐어요

“네 잘못이야” → “나 화났어” 내 마음을 표현하게 됐어요

입력 2014-04-08 00:00
수정 2014-04-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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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서울병원·삼성초 학생정신건강 증진사업 큰 성과

눌러뒀던 분노를 한번씩 분출시킬 때면 주변 친구들을 때리는 통에 재민(11·가명)이는 친구를 사귀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지난해 3학년 때까지 아이들은 재민이를 ‘종잡을 수 없는 아이’라거나 ‘무서운 아이’로 여겼다. 그랬던 재민이가 새 학기에 급우들이 뽑는 임원이 됐다. 겨울방학 동안 국립서울병원 아동·청소년 정신건강 증진사업팀과 부대끼며 화가 났을 때 대처법과 친구에게 상처 입히지 않는 법을 훈련한 덕분이다. 선거에 나선 재민이는 “이제 아무리 화가 나도 친구를 때리지 않겠다”고 다짐했고, 재민이의 변화를 지켜본 아이들은 선뜻 기회를 줬다. 재민이는 단지 치미는 분노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몰랐고, 지금은 방법을 배워 가고 있다는 점을 친구들은 믿었다. 그렇게 재민이와 친구들은 한 단계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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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서울 관악구 대학7길 삼성초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국립서울병원 정신보건 사회복지사들과 함께 마음의 작용에 대해 학습하는 모습. 무작위로 10여명씩 학급당 2개 그룹으로 나눠 서로의 마음을 표현하고, 친구의 마음을 이해하는 훈련을 하고 있다.  삼성초등학교 제공
지난해 서울 관악구 대학7길 삼성초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국립서울병원 정신보건 사회복지사들과 함께 마음의 작용에 대해 학습하는 모습. 무작위로 10여명씩 학급당 2개 그룹으로 나눠 서로의 마음을 표현하고, 친구의 마음을 이해하는 훈련을 하고 있다.

삼성초등학교 제공


서울 관악구 대학동의 삼성초등학교에서는 이런 식의 성장이 잇따라 벌어지고 있다. 이 학교와 국립서울병원(원장 하규섭)이 2년째 함께 진행 중인 ‘학생정신건강 증진사업’(증진사업)의 영향이다. 지난해에는 3학년 전체, 올해에는 1·4·6학년을 대상으로 학생들의 정신건강 관련 척도를 조사하고 학교폭력이나 정신건강 관심군 학생들에 대한 집중 관리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사업이다. 학부모와 교사를 대상으로 한 강의, 학생 전부를 대상으로 실시하는 프로그램도 병행된다.

삼성초와 서울 광진구 중곡동의 국립서울병원 간 거리는 23㎞에 이른다. 서울을 관통해야 하는 먼 거리에 있는 삼성초와 국립서울병원이 증진사업을 함께한 이유는 인성 교육에 대한 확고한 의지 때문이다. 심금순 교장은 7일 “교사들도 인성 교육에 힘쓰고 있지만, 정신건강 전문가들과 협력한다면 학생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봤다”면서 “다행스럽게 학생뿐 아니라 학부모, 교사 모두 적극적으로 사업에 참여해 줘 학생들이 정신적으로 성숙해지는 것 같다”며 웃었다.

자칫 민감할 수 있는 학생들의 정신건강 문제를 건드림에도 학부모들의 반발이 덜했던 이유는 문제 학생이 아닌 평범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접근한 덕이 크다. 고귀녀 국립서울병원 아동·청소년 정신건강 증진사업팀 부팀장은 “학교폭력이라는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이 생기기 전에 학생들을 대상으로 집단 상담을 실시하고, 위험요소가 발견되면 학생별 맞춤 대안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는 내용인 ‘감정카드’, “네가 잘못이야”라고 말하는 대신 “나는 너의 행동 때문에 화가 났어”라고 말하는 ‘나(I) 중심 대화법’ 등의 간단한 프로그램만으로 아이들의 감정 조절 능력이 향상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예상치 못한 기쁨이라고 한다. 고 부팀장은 “가해·피해 학생과 같은 고위험군 아이뿐 아니라 방관자 노릇을 하는 대다수 아이들이 방어자로 바뀌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증진사업을 경험한 학생들은 “친구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거나 “정신상담 과목이 생기면 좋겠다”는 소감을 밝혔다. 삼성초처럼 증진사업을 도입하는 데 적극적인 학교도 늘어 올해에는 2~3곳 더 늘릴 계획이다. 국립서울병원은 이번 증진사업 참여 학생 중 관심군을 장기간 추적관찰하고, 한국형 학교폭력 예방 모델을 만들어 보급한다는 장기 계획도 밝혔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2014-04-08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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