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는 서울에서 50분 남짓의 비행으로 갈 수 있는, 멀지 않은 곳이다. 그러나 바늘 굵기만큼의 작고 미세한 부분 하나로도 컨디션이 오락가락하는 축구 선수들에게 제주는 중동만큼이나 멀고 험한 곳이다. 원정에 나서는 대부분의 감독들이 가장 꺼려하는 곳이 제주다. 특히 올 시즌 나머지 14개팀 가운데 한팀도 적지 제주에서 ‘초짜’ 박경훈호를 이겨보지 못했다. 당최 뾰족한 묘수가 없었다. 반면 제주는 안방에서 진 적이 없다. 28일 서귀포시 제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전북과의 플레이오프도 마찬가지. 제주가 시즌 12승5무의 ‘안방무패’ 끝에 21년 만에 K-리그 정상을 노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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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는 후반 30분 터진 네코의 결승골에 힘입어 전북을 1-0으로 제치고 챔피언결정전에 올랐다. 제주는 이에 따라 새달 1, 5일 정규리그 1위 서울과 우승 트로피를 놓고 ‘홈 앤드 어웨이’ 방식의 챔피언결정전을 치른다.
제주가 결정전에 오른 건 지난 2000년 부천 SK 시절. 당시 제주는 FC서울(당시 안양 LG)과 3전2선승제의 챔피언결정전에서 맞붙었지만 2차전 승부차기 끝에 합계 0-2로 져 준우승에 머물렀다. 제주도 정상에 오른 적은 있다. 무려 21년 전인 1989년 정규리그 성적만으로 우승팀을 가릴 때였다. 유공 시절로 17승15무8패의 시즌 성적으로 정상에 올랐다. 당시는 고작 6개팀만이 정규리그를 뛰던 시절. 사실상 이번이 두 번째 도전이나 다름없다.
제주의 강점은 조직력이지만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스타플레이어는 없지만 그렇다고 전력이 들쭉날쭉하지 않다는 점이다. 스트라이커 김은중, 미드필더 구자철, 수비수 홍정호 등 자주 입에 오르내리는 포지션별 대표급 선수들이 골고루 포진하고 있는 것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대목.
승부는 제주의 고른 전력에서 갈렸다. 미드필드 중앙부터 전북의 수비를 교란한, 치밀한 패스를 통해서였다. ‘베테랑’ 전북 최강희 감독에 맞선 박 감독의 교체 타이밍도 절묘했다. 주인공은 전반 막판 교체 투입된 네코였다. 후반 30분 산토스가 중원에서 드리블하다 최전방의 김은중에게 볼을 내줬고, 수비수를 등진 김은중이 아크 정면에서 네코에게 살짝 패스했다. 전반 43분 이현호 자리에 들어간 네코는 논스톱 오른발 슛으로 골망의 오른쪽 구석을 뒤흔들었다. 그걸로 끝이 났다.
정규리그 3위로 6강 플레이오프와 준플레이오프를 거쳐 힘겹게 챔피언십 세 번째 관문을 통과하려던 전북은 막판 페널티 지역 왼쪽에서 시도한 루이스의 결정적인 슛이 크로스바를 살짝 넘어가면서 땅을 쳤다. 정규리그와 FA컵,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에 이어 챔피언결정전 우승컵까지 4관왕을 벼르던 당초 목표 가운데 한 가지도 이루지 못한 채 ‘빈손’으로 시즌을 마감했다.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2010-11-29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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