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신인왕 나야 나”
인생에 딱 한번밖에 없는 기회가 스물셋 동갑내기 세명 앞에 놓였다. 신인왕 타이틀이다. 올 시즌 프로배구에서 ‘무서운 아이들’로 떠오른 루키 3인방 곽승석(대한항공)·김정환(우리캐피탈)·박준범(KEPCO45) 중 누가 그 기회를 거머쥘까. 세명을 한 자리에 모아놓고 물어봤다. 다들 “내가 탈 확률이 반반”이라면서 뒷머리를 긁적였다. 하지만 뒤돌아서서는 “왜 욕심이 안 나겠느냐.”면서 전의를 불살랐다. 자신은 물론 상대방에 대한 평가도 냉철했다. 역시 신세대였다.스스럼없이 장난을 치다가도 배구 얘기만 나오면 태도가 돌변한다. 곽승석과 김정환은 “준범이가 신인왕이 될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확실히 박준범은 ‘준비된 돌풍’이다. 한양대 시절부터 워낙 이름을 날렸고 프로에 올 때도 전체 드래프트 1순위였다. 198㎝의 큰 키에서 나오는 묵직한 강타가 주특기다. 팀이 꼴찌에 머물러 있지만 위기 때마다 경기를 풀어가는 건 박준범의 몫이다. 김정환은 “준범이의 유일한 단점이 리시브였는데 연습을 많이 했는지 최근 눈에 띄게 좋아졌다.”면서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박준범 본인이 생각하는 보완점도 수비다. “포지션이 레프트여서 공격과 수비를 같이 안고 가야 하는데, 리시브를 보완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가 하면 김정환은 ‘깜짝 기량’을 보여준 케이스다. 자기 자신도 “대학 시절 감독님이 프로 와서 가장 ‘용 된’ 케이스로 나를 지목하더라.”면서 “내가 이렇게 잘할 줄 몰랐다.”고 할 정도다. 그는 신인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 5순위로 우리캐피탈에 들어왔다. 세명 모두 인정하는 김정환의 장점은 빠른 스윙과 빈 곳에 재빨리 공을 찔러 넣을 줄 아는 센스. 쟁쟁한 외국인 선수들이 포진한 라이트 포지션에서 공격종합 7위, 득점 9위에 올라 있는 것도 그 덕분이다. 김정환은 “(최)귀엽형이 부상을 당하는 바람에 주전이 됐는데 비교적 낮은 타점을 빠른 타이밍으로 극복한 게 주효했다.”면서 “다만 점프가 약한 게 단점”이라고 자평한다. 곽승석은 김정환에 대해 “기본기가 좋고 볼 컨트롤도 좋은 친구”라면서 “다만 포지션상 외국인 선수들이 해주는 ‘한 방’을 해야 하는 부담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비형 레프트인 곽승석은 박준범이나 김정환에 비해 화려하진 않지만 팀의 살림꾼 노릇을 톡톡히 한다. 만년 3위였던 팀의 선두 질주도 곽승석의 활약에 힘입은 바 크다는 게 구단 안팎의 평가다. 특히 서브리시브 부문 4위를 달리는 등 대한항공의 약점이던 서브리시브에서 제 몫을 해준다. 2% 부족한 게 있다면 공격. 곽승석도 그것을 안다. “수비에서 60~70%의 기량을 발휘했다면 공격 부문에서는 아직 제대로 보여드리지 못한 것 같다.”면서 “신인왕을 타려면 공격도 뒷받침돼야 하는 게 고민”이라고 한다. 박준범은 “승석이가 신장이 그리 큰 편이 아니어서 공격이나 블로킹 면에서는 조금 약하지 않나 한다.”고 평가했다.
이제 막판을 향해 달려가는 2010~11시즌에서 셋 다 좀 더 무르익은 기량을 선보이겠다고 다짐한다. 올 시즌에서 얻은 경험이 큰 재산이라면, 신인왕은 차라리 덤일 터. 셋의 앞날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글 사진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2011-02-08 2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