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뜁시다! 넘버원 스포츠] 호연지기 기르는 ‘한민족 상징’ 궁도
“활 부탁드립니다!” 지난 27일 서울 강서구 우장산 초입에 넓게 자리잡은 ‘공항정’에 활을 든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습사무언(習射無言·활을 쏠 때는 말을 삼가라는 궁도의 계훈)을 지키느라 조용한 국궁장에서 궁사의 손끝을 떠난 화살이 찬바람을 뚫고 145m 떨어진 과녁을 향해 날아갔다. 정조준에 실패했는지 “가라가라”를 외쳤지만 이내 “아, 짧네…” 하는 탄식이 이어진다. 과녁은 크기가 가로 6자6치(2m), 세로 8자8치(2m 66.7㎝)로 성인 남성보다 훨씬 크지만 먼 거리에서 쏘는 화살이 과녁을 맞히기란 여간해선 쉽지 않다.![지난 27일 서울 양천구에 위치한 국궁장 ‘영학정’에서 한 회원이 과녁을 조준하며 활 시위를 당기고 있다. 류재민 기자 phoem@seoul.co.kr](https://img.seoul.co.kr/img/upload/2019/11/28/SSI_20191128192525_O2.jpg)
류재민 기자 phoem@seoul.co.kr
![지난 27일 서울 양천구에 위치한 국궁장 ‘영학정’에서 한 회원이 과녁을 조준하며 활 시위를 당기고 있다. 류재민 기자 phoem@seoul.co.kr](https://img.seoul.co.kr//img/upload/2019/11/28/SSI_20191128192525.jpg)
지난 27일 서울 양천구에 위치한 국궁장 ‘영학정’에서 한 회원이 과녁을 조준하며 활 시위를 당기고 있다.
류재민 기자 phoe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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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활쏘기인 국궁은 오랫동안 한민족을 대표하는 무예이자 생활스포츠로서 명맥을 이어 오고 있다. 전국에 소재한 국궁장은 서울 8곳을 포함해 모두 384곳에 이른다. 국궁장은 대부분 1년 내내 24시간 개방하기 때문에 언제든 원하는 시간에 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주비(64) 공항정 고문은 “국궁은 아무 때나 혼자서라도 할 수 있어 편리하다. 실외에서 하는 자연 운동이다 보니 호연지기를 기를 수 있다”고 국궁의 매력을 자랑했다.
주 고문은 “팔로 당겨서 하는 종목이라 팔운동 같지만 발끝부터 몸을 안정적으로 고정시켜야 하는 전신운동”이라고 소개했다. 실제로 국궁을 쏴 보니 단순 팔운동이 아니었다. 활을 쏠 때 정(丁) 자 꼴도 팔(八) 자 꼴도 아닌 각도로 발을 벌리고 서는 ‘비정비팔’ 자세로 발을 붙이고 몸의 중심을 잡는 과정에서 코어근육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화살을 멀리 날리기 위해 활시위를 당기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온몸의 기 쏟아부어야 145m 날아가”
1순(5발)을 쐈을 뿐인데 어깨가 뻐근했다. 화살 하나를 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30초 남짓이었지만 고도의 집중력과 근력을 필요로 했다. 5년 전 국궁을 시작한 정영달(64)씨는 “정적인 운동이라서 가볍게 생각하지만 온몸의 기를 쏟아부어야 145m를 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주 고문은 “145m는 세계에서 가장 멀리 쏘는 거리이고 화살을 주으러 왕복하는 것도 다 운동이 된다”고 강조했다.
![활 시위에 오늬를 걸고 활시위를 당길 준비를 하는 모습. 우리나라 전통 활쏘기는 엄지손가락에 깍지를 끼고 활시위를 당기는 게 특징이다. 깍지는 암깍지와 수깍지로 구분하는데 암깍지는 깍지 낀 엄지손가락을 검지와 중지로 누르며 수깍지는 검지와 중지로 깍지 자체를 눌러 시위를 당긴다. 서울신문 DB·류재민 기자 phoem@seoul.co.kr](https://img.seoul.co.kr/img/upload/2019/11/28/SSI_20191128192555_O2.jpg)
서울신문 DB·류재민 기자 phoem@seoul.co.kr
![활 시위에 오늬를 걸고 활시위를 당길 준비를 하는 모습. 우리나라 전통 활쏘기는 엄지손가락에 깍지를 끼고 활시위를 당기는 게 특징이다. 깍지는 암깍지와 수깍지로 구분하는데 암깍지는 깍지 낀 엄지손가락을 검지와 중지로 누르며 수깍지는 검지와 중지로 깍지 자체를 눌러 시위를 당긴다. 서울신문 DB·류재민 기자 phoem@seoul.co.kr](https://img.seoul.co.kr//img/upload/2019/11/28/SSI_20191128192555.jpg)
활 시위에 오늬를 걸고 활시위를 당길 준비를 하는 모습. 우리나라 전통 활쏘기는 엄지손가락에 깍지를 끼고 활시위를 당기는 게 특징이다. 깍지는 암깍지와 수깍지로 구분하는데 암깍지는 깍지 낀 엄지손가락을 검지와 중지로 누르며 수깍지는 검지와 중지로 깍지 자체를 눌러 시위를 당긴다.
서울신문 DB·류재민 기자 phoe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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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만하게 보고 강도 높은 활에 덤벼들었다가 어깨를 다쳐 낭패를 보기도 한다. 쉽지 않은 종목인 만큼 2~3개월가량의 입문 수련 과정은 필수다. 쉽게 입문할 수 있도록 중구 남산에 있는 석호정이나 종로구 황학정 등에서는 국궁교실도 운영한다.
궁사들은 국궁의 매력을 ‘바른 자세’와 ‘심신 운동’으로 꼽는다. 활을 당기려면 자연스레 구부정한 자세를 교정할 수 있다. 한계수(71) 양천구체육회 궁도협회장은 “처음에 활을 배운 사람들은 자세를 바로잡느라 키가 1~2㎝ 클 정도”라면서 “바른 자세로 쏴야 날아가기 때문에 궁사들은 대개 평상시에도 자세가 좋다”고 말했다.
![국궁 과녁은 가로 6자6치(2m), 세로 8자8치(2m 66.7㎝)로 성인 남성이 옆에 서면 작아 보일 정도의 크기지만 145m 떨어진 거리에서 활을 쏘기 때문에 맞히기가 쉽지 않다. 류재민 기자 phoem@seoul.co.kr](https://img.seoul.co.kr/img/upload/2019/11/28/SSI_20191128192614_O2.jpg)
류재민 기자 phoem@seoul.co.kr
![국궁 과녁은 가로 6자6치(2m), 세로 8자8치(2m 66.7㎝)로 성인 남성이 옆에 서면 작아 보일 정도의 크기지만 145m 떨어진 거리에서 활을 쏘기 때문에 맞히기가 쉽지 않다. 류재민 기자 phoem@seoul.co.kr](https://img.seoul.co.kr//img/upload/2019/11/28/SSI_20191128192614.jpg)
국궁 과녁은 가로 6자6치(2m), 세로 8자8치(2m 66.7㎝)로 성인 남성이 옆에 서면 작아 보일 정도의 크기지만 145m 떨어진 거리에서 활을 쏘기 때문에 맞히기가 쉽지 않다.
류재민 기자 phoe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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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넘게 국궁을 즐기는 이환철(67)씨는 “몸의 자세에 더해 마음의 자세까지 바로잡혀야 과녁을 맞힐 수 있는 심신 운동”이라면서 “잡념이 많으면 절대 과녁을 맞힐 수 없다”고 보탰다.
전통의 스포츠 국궁은 전통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현대화, 대중화를 모색하고 있다. 전통을 따지자면 수제 각궁을 써야 하지만 제작 비용이나 보관법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최근에는 카본으로 만든 개량궁을 많이 사용한다. 화살 역시 촉을 날카롭게 해 과녁을 맞히던 방식으로는 회수도 어렵고 위험할 수 있기 때문에 요즘엔 끝을 둥글게 만들어 과녁에 맞고 튕겨 나오도록 한다. 과녁 근처에서 화살이 맞았는지 안 맞았는지 ‘고전기’를 흔드는 사람을 두는 전통을 유지하는 곳도 있지만 요즘은 신호등으로 알려주는 곳이 늘어나고 있다.
대한궁도협회가 주관하는 승단시험에선 5발씩 9번으로 총 45발을 쏴 과녁에 얼마나 명중시켰는지로 심사한다. 1단 24발, 2단 26발, 3단 28발이고 9단은 40발을 명중시켜야 한다.
5단 이상 궁사들에겐 ‘명궁’ 칭호가 따라붙는다. 5단 이상의 승단 시험은 전통의 각궁으로 치르도록 돼 있다. 온도와 습도에 민감한 각궁은 환경에 따라 다루기가 쉽지 않지만 그만큼 ‘명궁’의 가치도 올라간다.
류재민 기자 phoem@seoul.co.kr
2019-11-29 3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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