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주·폭탄돌리기…개미투자자만 ‘봉’
지난 16일 코스닥 시가총액 1위 기업인 셀트리온의 서정진 회장은 지분 매각과 경영권 포기를 선언하며 “공매도 세력의 끊임없는 공격에 지쳤다”는 이유를 들었다.서 회장의 진의에 대한 증권가 의견이 분분하지만 시가총액 4조원에 육박하는 기업 경영권을 ‘작전세력’ 때문에 내려놓겠다는 발표에 시장에는 파문이 일었다.
‘테마주 광풍’이 끝나자 셀트리온 공매도 논란이 이어지는 등 연초 이후 주가조작은 주식시장의 최대 화두로 떠올랐다.박근혜 대통령도 지난 3월 첫 국무회의에서 주가조작 근절을 강조했다.
작전세력의 활동공간이 증권사이트뿐만 아니라 스마트폰,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으로 번지면서 상장가 10개 가운데 1개에서 주가조작이 일어날 정도로 피해는 심각해졌다.
◇ 상장사 10개 가운데 1개가 ‘주가조작’ 피해 18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해 불공정거래 혐의가 적발된 종목은 유가증권시장 57개 종목,코스닥시장 143개 종목 등 총 200종목에 달한다.
현재 국내 증시에 상장된 종목이 1천921개 종목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상장기업 10개사 가운데 1개사에서 일주일에 4건꼴로 불공정거래가 발생한 셈이다.
특히 기업들의 몸집이 작아 주가를 조작하기 쉬운 코스닥시장에 불공정거래의 72%가 쏠렸다.
혐의 유형별로는 작전세력에 의한 시세조종이 42%로 가장 많았다.미공개정보 이용 35%,부정거래가 13%로 뒤를 이었다.
지난해에는 총선·대선 영향으로 테마주를 대상으로 한 단기 시세조종이 크게 증가했다.불공정거래가 적발된 상장사 10개사 중 3개사가 테마주로 엮여 있었다.
‘폭탄 돌리기’와 마찬가지인 테마주 거래는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 빠져나오면 된다는 인식에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
최근에는 불공정거래의 형태가 점차 다양하고 복잡해지고 있다.
인터넷 게시판과 SNS를 이용해 허위사실을 유포하거나 파생상품시장과 현물시장을 연계한 시세조종,수십 개 계좌를 동원해 수만 건 주문을 제출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실제로 작년 1월에는 개별 기업에 대한 루머를 퍼뜨려 주가를 끌어올리는 차원을 벗어나 시장 전체를 크게 흔드는 시세조종 사건도 있었다.
사전에 짜고 북한 영변에서 핵시설이 폭발했다는 루머를 여의도 증권가에 메신저를 통해 확산시켜 코스피를 10분 만에 1,840선에서 1,820선으로 끌어내린 사건이다.코스피 하락에 베팅한 풋옵션을 사들인 작전세력이 시세조종 주체였다.
올해 들어서는 케이블TV와 인터넷 증권방송을 이용한 작전세력이 줄줄이 기소됐다.
이들은 증권방송에서 ‘증시 전문가’ 행세를 하며 미리 매수해 둔 종목을 반복 추천,주가를 끌어올리고서 팔아치우는 수법을 썼다.
피해는 허위정보에 홀려 폭등한 주식을 산 ‘개미’들에게 고스란히 돌아왔다.
김준석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국 주식시장은 하루에 12억 주가 거래되는 대규모 시장이 됐다”며 “앞으로 시장과 상품이 다양해지고 금융IT 기술이 발달할수록 불공정거래가 고도화하고,지금까지와는 완전히 새로운 유형의 ‘작전’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 韓증시,왜 주가조작에 취약한가 한국 증시가 주가조작에 취약한 것은 개인들의 직접 투자 비율이 비교적 높은 데다 처벌 강도도 강력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거래소와 서울시가 집계한 자료를 보면 2011년 기준으로 서울 시민 7명 가운데 1명이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서울 주민등록인구 1천25만명 중 개인투자자인 주주는 139만명으로 13.6%에 달한다.주주명부상 주거지역을 확인할 수 있는 주주 대상이기 때문에 실제 주주는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주가조작범에 대한 처벌이 미약했다는 점도 원인으로 꼽힌다.
주가조작 적발에서 처벌까지 걸리는 시간이 2∼3년씩 걸리다 보니 처벌할 때쯤이면 주가조작 혐의자가 이미 파산해 피해보상을 받을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
주가조작 사건은 거래소 심리,금융감독원 조사,자본시장조사심의위원회 심의,증권선물위원회 의결 후 검찰 고발·통보,검찰 조사,법원 최종판결 등 조사 절차가 복잡했다.
금감원이 거래소로부터 주가조작 혐의를 통보받아 조사하는 데 평균 148일이 걸렸고,검찰 조사는 158일이 걸렸다.주가조작범의 혐의가 밝혀지기까지 평균 306일이 걸린 셈이다.
주가조작 세력은 IT기술을 주로 이용하는데,금감원은 대면조사만 할 수 있고 통화·문자·이메일 내용 등을 확인할 수 없는 한계도 있었다.
금감원 다음으로 조사에 나서는 검찰이 작전세력의 통화내용을 확인할 수는 있어도 내용을 열람하는 것은 판사의 영장이 있어야 가능했다.
그러나 이번에 금융위와 금감원 일부 직원에게 주가조작 수사권이 부여되는 등 주가조작 범법자의 엄단을 위한 제도 개선 방안이 마련된 만큼 앞으로의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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