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수입물량 현상 유지… 소극적인 통상 자세 비판… 필리핀 2년 협상과 대조
일부 농민 단체와 전문가들도 고육지책으로 높은 관세를 매겨 쌀 시장을 전면 개방하는 것이 쌀 산업 발전에 더 유리하다는 정부 입장에 수긍하고 있다. 쌀 관세화를 또 미룰 경우 의무수입물량을 2배 가까이 늘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상 유지를 위해 세계무역기구(WTO)와 협상조차 하지 않고 쌀 시장을 개방하려는 정부의 소극적인 통상 자세에는 문제가 있다는 비판이 거세다.필리핀 정부가 출혈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쌀 관세화를 유예하는 대신 현재 35만t인 의무수입물량을 80만 5000t으로 2.3배 늘리고 의무수입물량에 매기는 관세율도 40%에서 35%로 낮추기로 했다. 하지만 필리핀 정부로서는 밑질 게 없는 장사였다. 필리핀의 쌀 자급률은 85~90% 수준으로 매년 의무수입물량(80만 5000t)보다 많은 100만~200만t의 쌀을 수입하고 있다.
일본과 타이완은 관세화를 유예했다가 쌀 시장 개방을 선택한 대표적인 국가들이지만 실속은 챙겼다.
일본은 1999년 4월 관세화 유예 기한인 2000년보다 일찍 시장을 개방하면서 75만 8000t까지 늘어날 예정이었던 의무수입물량을 68만 2200t으로 줄였다. 2001년 WTO에 가입한 타이완은 1년 동안 쌀 관세화를 유예하다가 2003년부터 바로 시장을 개방해 14만 4000t의 최초 의무수입물량을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다.
한국 정부도 2005년과 2009년 WTO와의 협상 당시 쌀 관세화를 결정했다면 의무수입물량을 각각 20만 5000t, 30만 6000t까지 줄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쌀 시장을 개방하더라도 40만 9000t에 달하는 현행 의무수입물량은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
장은석 기자 esjang@seoul.co.kr
2014-07-19 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