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면 수석논설위원
여야는 세월호특별법과 민생법안을 놓고 여전히 시각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추석 민심 해석도 아전인수다. 여당은 “국민의 명령은 세월호 공방을 중단하고 민생법안을 처리하고 법치주의를 지키라는 세 가지”라며 세월호특별법과 민생법안의 분리 처리를 강조한다. 야당은 “지난 7∼8월 국민적 요구인 세월호특별법의 통과가 무엇보다 우선시됐지만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은 세월호 유가족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며 정부·여당을 겨냥한다. 언제까지 평행선을 달릴 것인가. 방향을 틀 줄 모르고 떼지어 앞으로만 내달리다 호수에 빠져 죽는 레밍의 질주 같다.
세월호 참사 다섯 달째다. 정쟁을 멈추고 4·16 ‘안전국치일’ 당시의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는 너나없이 ‘대한민국, 이대론 안 된다’며 세월호 이후 완전히 다른 나라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실제로 달라진 것을 찾아보기 어렵다. 세월호 진상 규명은 오리무중이다. 이러다가 진실이 영원히 묻히는 것이 아닌가하는 두려움마저 든다. 세월호 비리를 눈감아준 관피아 적폐 청산도 정피아 낙하산이 기승을 부리며 빛을 잃어가고 있다. ‘코미디 인사의 절정’이란 비아냥까지 들으며 감행한 한국관광공사 ‘낙감’(낙하산 감사) 인사는 한마디로 변명무로(辨明無路)다.
304명의 목숨을 앗아간 참사가 일어났는데도 자진해서 책임지는 장관 하나 없다는 것은 누가 봐도 비정상이다. 과거 벼슬살이를 하는 선비들이 제 허물을 스스로 밝히는 자인소(自引疏)를 내고 몸을 숨긴 것은 본인에게 꼭 귀책사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나아갈 때와 물러날 때를 아는 것은 전통시대나 지금이나 공직생활의 제1 덕목이다. 세월호 사태 주무장관인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의 속내가 궁금하다. 그는 “사고 수습이 마무리되면 져야 할 책임에 따라 합당한 처신을 할 것”이라고 했다. 진도 팽목항에 넉 달 넘게 머물다 복귀했으면 어느 정도 사고 수습이 돼 가고 있어서 그런 것 아닌가. 더 이상 자리에 미련을 둘 이유가 없다. 사고 현장에서 애쓴 점을 인정한다 해도 그것이 세월호 면책 사유가 될 수는 없다. 유가족의 아픔을 달래주고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는 길은 세월호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 소재를 가려낼 수 있는 세월호특별법을 조속히 제정하는 것이다. 이 장관은 최소한 세월호특별법에 관한 한 방관자적 입장에 머문 것은 아닌지 스스로 돌아볼 필요가 있다.
시인 장석주는 “그대 아직 누군가 잊지 못해 부치지 못한 편지 위에 눈물 떨구고 있다면 그대 인생엔 여전히 희망이 있다”고 썼다. 그러나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절실한 것은 눈물 속에 피는 희망이 아니다. 그리운 얼굴을 잊지 못하는 만큼 미워하는 이들을 잊을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가슴에 차오르는 분노를 삭이고 미운 자를 진정으로 용서하고 화해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해줘야 한다.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서두르기 바란다. 국민의 세월호 피로도는 극에 달했다. 일단 진상조사위원회에 실질적인 특검 추천권을 보장하는 방향에서 접점을 찾아나가야 할 것이다. 세월호특별법을 빨리 매듭짓고 민생 안정과 경제 활성화에 매진하는 것이 바른길이다.
2014-09-11 3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