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마음먹기 나름/황수정 논설위원

[길섶에서] 마음먹기 나름/황수정 논설위원

황수정 기자
황수정 기자
입력 2019-08-20 17:18
수정 2019-08-21 02:48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절집에서 하룻밤 잤더니 밤새 귀가 호사를 했다. 계곡 물소리에 묵은 귓바퀴가 씻겼다. 많도 적도 않게 내린 비에 계곡물이 알맞게 불어 물소리는 담담하고. 때맞춰 잘 왔다는 스님 덕담을 듣고서 간밤에는 맑은 잠을 청했다.

산방에는 있는 것보다 없는 것들 천지다. 단출한 물건들은 요긴한 대접을 받는다. 달랑 한 권 꽂힌 책은 한 줄 한 줄 아껴서 읽게 되고, 미지근해서 줘도 안 먹었을 물 한 통은 사막에서처럼 달고.

스님 고무신을 따라 발소리 말소리 없이 뒷마당을 걷는다. 좁은 공간이 무슨 포행 길이 되려나, 괜한 걱정을 했다. 이 끝에서 저 끝으로 다시 이 끝으로. 걸음을 쪼개 잠자코 걸었더니 작은 마당은 실컷 걷고도 남았다. 구비구비 산길을 욕심내지 않아도 되는 거였다.

무릎이 부딪치는 작고 누추한 방에서라도 몸만 돌려 앉으면 동서남북이 바뀐다 했지. 생각을 바꾸면 보이는 것들의 명암이 달라진다고, 없던 창문이 열린다면서. 조선 후기 문장가 이용휴의 ‘살구나무 아래 집’(杏嶠幽居記)에서 읽었던 오래된 글이다.

남들 다 아는 이치를 겨우 생각하고서 나는 혼자 득의만만. 하늘에 뜬 저것은 해인지 낮달인지. 마음 놓고 졸음에 잠겨 보는 늦여름 산사의 아득한 오후.

sjh@seoul.co.kr

2019-08-21 33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민생회복 소비쿠폰'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은?
정부가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통해 총 13조원 규모의 ‘민생회복 소비쿠폰’을 지급하기로 하자 이를 둘러싸고 소셜미디어(SNS) 등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경기에 활기가 돌 것을 기대하는 의견이 있는 반면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소비쿠폰 거부운동’을 주장하는 이미지가 확산되기도 했다. ‘민생회복 소비쿠폰’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경기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포퓰리즘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