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년 넘도록 화산재에 고스란히 파묻혀 있던 폼페이가 다시 역사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1594년이다. 수로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건물과 회화 작품이 우연히 발견됐다. 지금까지도 발굴 작업은 계속되고 있다. 베일이 차차 벗겨지면서 폼페이는 고대도시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현대적인 흔적들이 곳곳에서 드러났다. 공중목욕탕, 선술집, 검투사의 집, 창녀들의 집, 1만명 이상 수용할 수 있는 원형경기장 등 현대인의 일상생활과 별다를 것 없는 생활양식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더욱 놀라운 것은 2000년 전 폼페이 귀족들의 대저택에서 발견되는 수준 높은 문화다. 기원전 7~8세기 그리스인들의 세력 아래 있었던 상업도시 폼페이는 기원전 89년 로마의 지배를 받게 되면서 로마 귀족들이 호화별장을 건설하는 휴양지로 주목받았다. 도시가 확장되면서 그리스와 로마 문화가 융합돼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다. 이런 사실을 보여 주듯 폼페이의 대저택 벽면과 바닥에서는 보존이 잘된 정교한 프레스코화, 화려한 모자이크 양식 등이 다수 발견된다.
프레스코는 벽에 회반죽을 바르고 어느 정도 마른 뒤 스케치하고 그 위에 채색하는 벽화의 대표적 기법이다. 인류 회화사에서 가장 오래된 그림의 기술이다. 기원전 약 3000년 미노스 문명의 중심지인 크레타섬의 크노소스 벽화가 대표적이다.
지난 11일(현지시간) 폼페이에서 놀랍도록 잘 보존된 프레스코 기법의 벽화 여러 점이 또 발견됐다. 한 벽화에는 그리스 신화 속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가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네를 처음 만나는 장면이, 또 다른 작품에는 그리스신화의 태양신 아폴론이 트로이의 공주 카산드라에게 구애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고 한다. 화산 폭발로 한순간에 폐허가 된 고대도시의 찬란한 문화가 이토록 잘 보존돼 있었다는 사실이 그저 경이롭고 아이러니하기까지 하다.
2024-04-15 2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