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도의 군선도, 기생충 속 그 집… 세계 예술가들의 새 뮤즈 ‘K컬처’

김홍도의 군선도, 기생충 속 그 집… 세계 예술가들의 새 뮤즈 ‘K컬처’

윤수경 기자
윤수경 기자
입력 2024-09-02 03:28
수정 2024-09-02 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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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서 영감받은 작품들 눈길

니콜라스 파티 ‘더스트’
‘파스텔의 마술가’ 국내 첫 전시회
초상화에 청자 등 한국 문화 조합
“문화 예술 통해 과거와 미래 연결”

엘름그린&드라그셋 ‘공간들’
‘공간 탐색’ 이야기 품은 설치미술
140㎡ 규모 으스스한 ‘섀도 하우스’
“기생충서 영감… 집, 이야기 촉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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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스 파티의 ‘청자 주자가 있는 초상’으로 서울 리움미술관의 소장품인 ‘청자 동채 연화문 표형 주자’를 모델로 한다. 호암미술관 제공
니콜라스 파티의 ‘청자 주자가 있는 초상’으로 서울 리움미술관의 소장품인 ‘청자 동채 연화문 표형 주자’를 모델로 한다.
호암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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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의 ‘사슴이 있는 초상’. 조선 후기의 ‘십장생도 10곡’에 나오는 장수의 상징, 사슴이 인물을 에워싸고 있다. 호암미술관 제공
파티의 ‘사슴이 있는 초상’. 조선 후기의 ‘십장생도 10곡’에 나오는 장수의 상징, 사슴이 인물을 에워싸고 있다.
호암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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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의 ‘복숭아가 있는 초상’. 김홍도의 ‘군선도’에 등장하는 복숭아를 화면 가득 담아냈다. 호암미술관 제공
파티의 ‘복숭아가 있는 초상’. 김홍도의 ‘군선도’에 등장하는 복숭아를 화면 가득 담아냈다.
호암미술관 제공


우리나라 국보인 청자 주자가 들어간 초상화,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에서 촉발된 설치 작품 등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아티스트들이 ‘K컬처’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을 잇달아 선보여 눈길을 끌고 있다.

2022년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88억원에 이르는 경매가를 올리는 등 미술시장에서 ‘(작품이) 없어서 못 파는 작가’가 된 스위스 출신의 니콜라스 파티(44)가 경기 용인 호암미술관에서 국내 첫 전시를 연다. ‘파스텔의 마술가’라는 별명답게 그가 회화에서 쓰는 재료는 파스텔이 유일하다. ‘더스트’(먼지)라는 전시 제목도 쉽사리 공기 중에 흩어지는 파스텔의 특성과 연계된다.

고대부터 근현대를 아우르는 미술사의 다양한 작가, 모티브, 양식, 재료 등을 자유롭게 참조하고 샘플링하며 자신만의 초현실적 이미지를 만들어 온 그는 이번 전시에서 우리나라 미술사에서 따온 다양한 문화적 상징을 재구성한다.

특히 신작 초상 8점은 조선시대 ‘십장생도 10곡병’과 김홍도의 ‘군선도’를 참조해 상상 속 여덟 신선(팔선)을 형상화했다. 초상화 속 인물의 상반신을 대신하고 있는 청자 주자는 리움미술관의 소장품인 ‘청자 동채 연화문 표형 주자’를 모델로 한다. 또 인물을 에워싼 사슴, 학 등은 십장생도에 나오는 장수의 상징물을 차용했다. ‘군선도’ 속 개는 초상화 속 인물의 갈래머리 모양처럼 자리잡았다. 시대와 문화를 넘나드는 이런 조합은 관람객의 상상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파티는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전시 기획 초기 단계부터 한국의 예술품을 전시에 함께 표현하는 게 핵심이었다”며 “지난해 한국을 방문해 리움의 전시품을 비롯한 소장품을 살펴보면서 큐레이터와 함께 미묘하고 복잡한 관점에서 작품을 선정하고자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이런 작업을 벌이는 이유에 대해 그는 “문화 예술을 통해 과거, 미래의 인류와 가깝게 연결될 수 있고 예술 작품에 담긴 아름다움, 시적인 면, 다양한 감정이야말로 인류가 직면한 질문에 대한 해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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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 듀오 미카엘 엘름그린과 잉가 드라그셋의 작품인 ‘더 아모레퍼시픽 풀’의 모습. 물이 빠진 수영장에 고대 작품을 연상시키는 백색의 조각들이 고립된 채 놓여 있다.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제공
아티스트 듀오 미카엘 엘름그린과 잉가 드라그셋의 작품인 ‘더 아모레퍼시픽 풀’의 모습. 물이 빠진 수영장에 고대 작품을 연상시키는 백색의 조각들이 고립된 채 놓여 있다.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제공


‘공간들’(Spaces)이란 전시를 통해 3일 서울 용산구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을 찾아오는 아티스트 듀오 미카엘 엘름그린(63)과 잉가 드라그셋(55) 역시 장소의 특정성, 특정한 사회적·역사적 맥락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작품을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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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름그린·드라그셋의 작품인 ‘섀도 하우스’의 일부. 한 아이가 창에 입김을 불어 나(I)라는 글자를 쓰고 있다.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제공
엘름그린·드라그셋의 작품인 ‘섀도 하우스’의 일부. 한 아이가 창에 입김을 불어 나(I)라는 글자를 쓰고 있다.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제공


특히 예전부터 ‘집’이라는 공간의 탐색을 이어 오던 이들은 이번엔 영화 ‘기생충’에 등장하는 집처럼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공간을 빚어냈다. ‘섀도 하우스’란 제목의 140㎡ 규모의 집에는 거실, 주방, 침실, 화장실 등이 갖춰져 있다. 유리창에 홀로 서 있는 아이는 창문에 입김을 불어 나(I)라는 글자를 쓰고 있다. 집 입구에 놓인 거울에는 ‘다시는 보지 말자!’라는 글이 쓰여 있다. 아이와 함께 버려진 것으로 보이는 집은 어딘지 모르게 으스스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엘름그린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공포 영화의 세트장 같기도 하고 잉마르 베리만 감독의 영화에 나올 법한 공간처럼 보이는 이 작업은 영화 ‘기생충’에서 영감을 받았다”며 “‘기생충’에서는 집이라는 공간 자체가 영화의 내러티브, 이야기를 촉발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집 외에도 이들은 미술관을 물이 빠진 수영장과 레스토랑, 실험실처럼 보이는 주방, 작가 아틀리에 등으로 변신시켰다. 아모레퍼시픽미술관 관계자는 “두 작가가 창조한 공간에 들어선 모든 관람객이 다양한 이야기 요소들을 발견하고 스스로 새로운 의미를 찾아 나가는 주인공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파티의 전시는 내년 1월 19일까지 열리며 엘름그린·드라그셋의 전시는 내년 2월 23일까지 계속된다.
2024-09-02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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