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재단 ‘일본 속 고대 한민족 문화’ 연구 첫 성과물 발간
일본의 고대 국가형성사에서 도래인(到來人)과 도래 문화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도래인은 외부로부터 일본 열도로 유입된 사람들을 가리키지만 그 대다수는 한반도에서 건너간 사람들이다. 7세기 백제 멸망 이후 지배층이 일본으로 건너갔다는 사례 말고도 3~4세기에도 한반도 국가들 사이에 힘의 균형이 깨지거나 전란이 일어나거나 하면 힘을 잃은 국가의 지배층들은 보따리를 싸서 일본으로 떠나갔다. 당연한 일이다. 이것은 중국이 전란에 휩싸이거나 권력투쟁이 일어났을 때 패배한 중원의 세력들이 한반도로 유입된 것과 비슷하다. 한국 고대사에 ‘기자조선’이니 ‘위만조선’이니 하는 것들이 그것이다.
동북아역사재단 제공
일본 효고현 간스즈카 고분에서 출토된 금제 수식부이식(금 귀걸이). 박천수 교수는 “사슬과 중간의 공구체, 장식 문양을 볼 때 대가야산으로 보인다.”고 말한다(왼쪽). 일본 교토부 나구오카키타 1호분에서 출토된 토기들은 5세기 초에 제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경남 창원시 도계동 4호분과 김해시 가달 5호분에서 출토된 창녕양식 토기와 흡사하다.
동북아역사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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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최신 발굴 성과 등 고고학적 자료와 문헌 자료를 토대로 한반도 문화가 집중적으로 나타나는 긴키(近畿) 지방을 중심으로 3~8세기 고대 한반도 문화가 일본에 끼친 영향과 교류 과정을 살펴본다. 일본 역사로 보면 고분시대부터 아스카와 나라시대까지를 대상으로 했다. 박천수 경북대 교수가 집필했다. 박 교수는 1991년부터 5년간 오사카 대학에서 고대 일본 문화의 중심지인 긴키 지역을 돌아보았고, 2003년과 2007년 한·일국제교류기금이나 일본 국제교류기금의 초청으로 일본 고대 문명과 한반도와의 관계를 살펴봤다.
박 교수는 “신라 왕자인 아메노히보코(天日槍) 전승으로 유명한 다지마(但馬) 지역을 답사하면서 5세기 이후 신라 문화가 지속적으로 이입된 것을 확인한 것이 인상적”이었다며 “나라문화재연구소 아스카자료관에서 소가(蘇我)씨가 봉헌한 신라산 유리구술과 금정(鋌)을 손에 접했을 때 감동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 책은 일본 각 지역의 한반도 관련 유적을 단순히 나열하지 않고 각 지역 유적들의 유기적인 관계를 분석해 고대 한반도 문화가 일본에 이입되어 가는 과정을 밝히고 있다.
한반도 고대국가의 문화는 일본에 골고루 전파됐다. 특히 이번 조사에서는 가야 문화가 일본에 유입됐음을 보여 주는 흔적들이 대거 발견됐다. 조사팀은 4세기에 철 단야(鍛冶·금속을 불에 달구어 벼림)와 같은 금관가야의 문화, 5세기 후반에는 금공(工·금속세공)과 마사(馬飼·말사육) 등 대가야 문화가 일본에 전파된 흔적을 찾아냈다.
장례 제도인 장제(葬制), 마사, 토목기술 등 백제 문화는 6세기 전반에 일본에 본격적으로 유입됐으며 승마, 금공, 철공 기술 등 신라 문화는 5세기 전반에 일찌감치 일본에 전파된 것으로 확인됐다.
불교, 화장, 왕릉의 풍수사상, 고대 일본 왕실의 보물창고인 정창원(正倉院)의 신라 유물 등 통일신라 문화가 일본에 미친 영향도 종합적으로 살펴봤다.
이 책은 특히 일본에 전해진 고대 한반도 문화를 단순히 중국 문화를 전달하는 매개로 볼 수 없다고 지적하면서 도래인의 활동과 역할, 고대 한반도 문화가 일본에 미친 역사적 의의를 집중 분석했다. 실제로 긴키 지방 전역에 한반도 도래인이 거주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단순히 한반도 문화가 일본에 전해져 일본의 문명화가 이뤄진 게 아니며, 일본의 문명화에 도래인이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보여 준다는 것이다.
문명은 원래 서로 교류하고 섞이는 것이니, 이런 연구성과가 당연한 것이지만 한국의 박물관에서는 볼 수 없는 유물들을 구경한다는 생각으로 죽 훑어보면 재밌겠다.
문소영 기자 symun@seoul.co.kr
2012-12-26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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