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초 이야기] 냉이

[야생초 이야기] 냉이

입력 2011-02-27 00:00
수정 2011-02-27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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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싸한 향기로 향수를 자극하는 냉이

대형마트 채소류 코너를 지나다 보니 이 겨울에 있어서는 안 될 나물 하나가 눈에 띈다. 세상에나, 이 엄동에 무슨 냉이람?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한 것이 틀림없다. 짙은 녹색이 아니라 웃자란 듯 연록색에다 토실한 뿌리까지… 들에서 제멋대로 자란 냉이가 아닌 것이다. 과연 이렇게 한겨울에 비닐하우스에서 재배를 해서까지 먹어야 할까, 냉이의 그 오롯한 맛은 과연 있기나 할까, 봄이라면 저걸 돈을 주고 사 먹을까? 별의별 부정적인 생각을 하며 마트를 빠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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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씨구, 마트 앞을 지나 버스 정류소 가까이 오니 길가에 좌판을 벌이고 있는 할머니들 무릎 앞에도 한 무더기 냉이가 있는 게 아닌가? 그렇다 이것 역시 하우스에서 재배한 냉이다. 이쯤에서는 나의 편견을 거두어들여야겠다. 우리의 토종 입맛을 아는 사람이라면 냉이의 맛을 어찌 마다 하랴.

그렇다. 냉이는 우리의 입맛을 자극하는 향수의 나물이다. 그 이름도 지역에 따라 가지가지여서 나생이, 나숭개, 나싱이 등으로 불린다. 해마다 봄이 되면 어른 아이 할 것없이 바구니를 들고 들로 언덕으로 나가 나물을 캤다. 그 가운데 겨우내 잃었던 입맛을 찾아주며 가장 먼저 봄을 알려주는 것이 곧 냉이 아니던가? 어머니와 누이들을 따라 봄 언덕을 찾아다니며 우리는 “달래 냉이 씀바귀 모두 캐오자. 종달이도 높이 떠 노래 부른다…”는 동요를 흥얼거리며 나물을 캐던 때가 있었다.

겨울이라고 냉이가 없진 않다. 두해살이풀인 이 냉이는 겨울을 난다. 볕이 잘 드는 길가나 언덕 밭두둑을 자세히 보면 갈색으로 변한 냉이의 뿌리잎이 로제트로 바짝 땅에 엎드려 겨울을 난다. 그러나 아무리 냉이를 뿌리째 먹는 나물이라 하지만 잎이 거무스레 보잘 것 없는 겨울 냉이는 잘 캐지 않는다. 물론 여름, 가을 구분하지 않고 먹을 수 있는 나물이긴 하다.

겨울 지나며 푸성귀를 제대로 먹어보지 못하고 저장 음식만을 먹다가, 이른 봄 납작하게 땅에 엎드려 푸른 싹을 내밀고 가녀린 꽃대를 내미는 냉이, 그것도 꽃이 피기 전에 야들야들한 그 어린 싹을 뿌리째 캐내어 된장국을 끓여 먹던 그 맛이란! 또는 살짝 데쳐서 된장에 무쳐 깨소금 살짝 흩뿌려 먹던 그 고소하고 상큼한 맛이란! 그 향수를 아는 사람이라면 알량한 편견 때문에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

된장에 무쳐 먹고 된장국을 끓여 먹는 이유가 있단다. 우리네 양념이 그게 그거다 보니 뭐 된장하고 잘 어울렸겠지 했는데 자료를 찾아보니 그럴 수밖에 없는 지혜가 담겨 있다. 냉이에 풍부한 비타민 A와 비타민 C가 된장에는 없어 이를 보완해 주는 역할을 한단다. 또한 항암작용을 하며 혈압을 낮추고 체내에 콜레스테롤이 축적되지 않도록 해주는 된장의 효과와 냉이의 비타민 A와 C, 칼슘, 인, 철분 등 무기질이 어우러져 예로부터 냉이는 된장과 궁합이 맞았다 한다.

이 좋은 냉이를 그냥 쌈을 싸먹거나 날로 먹는 경우가 별로 없는데 여기에도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냉이에 들어 있는 베타카로틴은 지용성 비타민이라서 생으로 먹을 경우 보다 익혀서 먹으면 소화율을 높여 흡수율도 높아진단다. 카로티노이드가 있는 식품을 적당한 열을 가해 요리했을 때 생물학적 이용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너무 오래 가열하면 냉이에 들어 있는 비타민 C가 손실되고 베타카로틴의 흡수율이 떨어지므로 가능한 살짝 데쳐야 한다. 냉이 속의 칼슘이나 철분은 끓여도 쉽게 파괴되지 않고 약간 파괴된다 하더라도 국물 먹는 음식에는 그대로 녹아 있으므로 무방하다.

도대체 우리 조상들은 이렇게 과학적인 정보들을 알고서 먹었던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 선조들의 그 예지력과 지혜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데 이 냉이가 우리 토종식물이 아니란다. 원래 유럽이 그 고향인데 아득한 옛날 먼저 문물을 받아들인 중국의 물자들에 묻어 와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왔으리라 추정한다. 그렇게 이제 전 세계 곳곳에 자라는 식물이다. 모래땅이건 젖은 땅이건 토양을 가리지 않는다. 다 자라면 높이가 10~20cm 정도이다. 잎줄기가 방사상으로 땅 위에 퍼진다. 이를 두고 로제트라고 한다. 새잎은 막 났을 때는 혀 모양이지만 자라면서 거친 톱니가 생긴다.

이른 봄에 꽃대를 내밀고 아주 작고 가녀린 꽃을 피운다. 가녀리다 했지만 한겨울에도 죽지 않고 해를 넘기는 강인함을 갖고 있다. 한 꽃의 네 꽃잎이 십자 모양을 이루며 서로 대칭을 보인다. 이런 꽃차례를 일러 십자화라 한다. 여느 풀꽃보다 이른 봄에 꽃이 핀다. 긴 겨울 지나고 그것도 꽃이라고 자잘한 몇 개 꽃을 물고 추위에 피어나는 걸 보면 새삼 자연의 섭리에 오묘함이 느껴진다. 물론 어떤 그리움 같은 것 향수 같은 것도 밀려온다.

이 꽃이 지고 나면 독특한 모양의 씨앗이 맺힌다. 냉이의 씨앗은 심장 모양의 열매에 들어 있는데, 납작한 삼각형 모양의 꼬투리이다. 열매는 줄기 끝에 꼿꼿이 서서 튀어나온 모습으로 매달려 있다. 모양만 독특한 게 아니라 냉이의 씨는 젖으면 끈적이는 합성물을 방출하는데, 수생 곤충이 거기에 달라붙으면 끝내 죽고 만다고 한다. 그래서 모기가 유충일 때 방제하는 방법에 쓰일 수도 있다니 신기하기만 하다.

요즘은 냉이를 무쳐 먹거나 국으로만 먹는 게 아닌 모양이다. 자료를 검색하다보니 냉이차, 냉이부침, 냉이즙, 냉이 효소, 냉이술… 등 건강식품으로 냉이를 이용하지 않는 영역이 없을 정도이다. 생약명으로는 제채(薺菜)라고 하여 전초를 달여 위궤양, 치질, 폐결핵에 사용하며 혈압강하, 지사제, 건위소화제, 지혈제, 자궁출혈 및 월경과다 치료제로도 이용했다고 한다. 요즘이야 병원에 가고 약국에 가면 그만이지만 그만큼 냉이가 건강에 좋다는 말 아니겠는가.

마트는 그냥 빠져 나왔지만 좌판을 벌여놓고 있는 할머니 앞은 그냥 지나치지를 못했다. 향이나 맛이 노지에서 난 것보다야 못하겠지만 꼭 맛으로만 먹나. 때론 향수로 먹기도 한다. 오늘은 냉이 무침을 만들고 냉잇국을 끓여 보리라.

글_ 복효근 금지중 교사·사진_ 조기수 남원생태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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