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 사찰’ 문건] 검찰조차 지원관실 ‘눈치’… 사법처리 놓고 의중 살펴

[‘민간인 사찰’ 문건] 검찰조차 지원관실 ‘눈치’… 사법처리 놓고 의중 살펴

입력 2011-01-10 00:00
수정 2011-01-10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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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정수석실 문건연루·수사개입 파장

김종익 전 NS한마음 대표의 사찰 내용을 동향보고 형식으로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보고했다는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정무위(국회) 제기 민간인 내사 의혹 해명’ 문건은 민정수석실에 보고됐을 것이라는 그동안의 정황(지원관실 정영운 컴퓨터 하드디스크에서 나온 ‘민정수석 보고용’ 폴더)이 사실로 확인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특히 당시 민정수석이었던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가 “(김 전 NS한마음대표의 불법 사찰을) 보고받은 사실이 없다.”고 강력히 주장하고 있지만, 그 자체가 불법인 민간인 사찰이 민정수석실에 보고됐다는 것만으로도 도덕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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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관실의 ‘해명용’ 문건  지난해 6월 국회 정무위 민주당 의원들이 ‘민간인 사찰’ 의혹을 제기하자 공직윤리지원관실에서 ‘해명용’으로 작성한 문건. 문건에는 지원관실에서 김종익 전 NS한마음 대표 사찰 결과를 민정수석실에 보고하고, 검찰과 민정수석실이 연락을 주고받은 내용이 담겨 있다.
지원관실의 ‘해명용’ 문건

지난해 6월 국회 정무위 민주당 의원들이 ‘민간인 사찰’ 의혹을 제기하자 공직윤리지원관실에서 ‘해명용’으로 작성한 문건. 문건에는 지원관실에서 김종익 전 NS한마음 대표 사찰 결과를 민정수석실에 보고하고, 검찰과 민정수석실이 연락을 주고받은 내용이 담겨 있다.


특히 김 전 대표의 사법처리를 놓고 검찰이 민정수석실을 통해 지원관실의 의중을 살피고, 민정수석실이 이를 검찰에 알려주는 진풍경도 벌어졌다. 검찰조차 눈치를 볼 정도로 지원관실이 무소불위의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방증하고 있고, 한 민간인을 사찰하고 사법처리하는 데 권력기관이 총동원되다시피 했음을 알 수 있다.

이 문건에 따르면 지원관실은 2008년 9월 김 전 대표 사찰 결과를 민정수석실에 보고했다. 앞서 검찰이 작성한 ‘지원관실 정영운 하드디스크 분석보고서’에서는 김 전 대표와 관련해 ‘BH(Blue House, 청와대 지칭)보고’ ‘민정수석 보고용’ 문건명이 나왔는데, 작성일은 각각 2008년 9월 27일과 10월 1일이다.<서울신문 2010년 10월 26일 자 1·10면> 민정수석실은 9월 말 또는 늦어도 10월 초에 김 전 대표 사찰 결과를 보고받았다고 볼 여지가 다분하다. 물론 정 후보자가 직접 보고를 받았다는 확증은 아직까지는 없다. 하지만 폴더가 ‘민정수석 보고용’으로 돼 있는 만큼 논란이 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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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후보자가 민정수석으로 있는 동안 지원관실에서는 다수의 ‘동향보고’ 문건을 작성했다. 검찰이 작성한 ‘김충곤 전 점검1팀장 내부망 하드디스크 분석보고서’에 ‘관심인물동향(2008.10.27.)’ 파일명이 나오는 등 지원관실 직원들의 컴퓨터 곳곳에서 동향보고 파일이 발견됐다. ‘정무위 문건’에 ‘민정수석실에 동향보고 형식으로 보고했다.’고 나온 만큼 이들 문건 내용도 민정수석실에 보고됐을 개연성이 있다. 이처럼 지원관실이 여러 사찰 결과를 민정수석실에 수시로 보고했다면 문제는 간단치 않다. 법적 책임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란 지적도 있다. 법조계 관계자는 “만약 사실이라면 지시하고 보고받은 사람은 공범으로 처벌되며, 지시받아 실행한 ‘행동대장’(이인규 전 지원관)은 정상이 참작돼 형량이 줄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 전 지원관은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징역 1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앞서 지적했듯이 민정수석실이 김 전 대표의 사법처리에 개입한 점은 논란거리다. 검찰은 2009년 10월 김 전 대표 사법처리 전에 민정수석실을 통해 지원관실의 의견을 요청했고, 지원관실은 민정수석실을 통해 ‘기소 의견’을 제시했다. 민정수석실이 단순 의견전달자일 수도 있지만 조율자 역할도 의심해볼 수 있다. 참여연대 이재근 시민감시팀장은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의 피의자 입장과 다름없는 청와대가 사찰과 관련해 검찰 수사에 개입했다면, 이는 기본적으로 검찰의 독립성을 훼손한 행위임은 물론 도가 넘은 직권남용에 해당한다.”고 비판했다.

이와 관련, 당시 수사를 담당한 안상돈 대구지검 차장검사는 “명예훼손은 피해자의 처벌의사가 있어야 하는 반의사불벌죄라 민정수석실을 통해 처벌 의사를 물은 것뿐이며, 지원관실은 의견을 개진할 위치가 아니다.”라면서 “청와대에서 따로 의견이 오지 않았고, 제반 사항을 고려해 기소유예 처분을 했다.”고 해명했다.

법무부도 민간인 불법 사찰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문건에는 ‘이 건(김종익 건)을 청와대(민정)에서 구체적으로 알게 된 경위는’이라는 국회 정무위원들의 예상 질문에 ‘대통령 명예훼손과 관련된 헌법소원이 제기된 것을 알게 된 법무부에서 청와대로 정보를 준 것으로 알고 있다. 청와대(법무)에서는 구체적인 내용을 알고자 김종익에게 연락을 취했는데, 이때 김종익은 일이 더 확대되기를 원하지 않는다며 답변을 회피했다고 한다.’고 적혀 있다. 김 전 대표는 검찰이 기소유예 처분을 하자 ‘죄도 없는데 범죄자로 낙인 찍혀 억울하다.’는 취지로 2009년 12월 23일 헌법소원을 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황희석 변호사는 “기소유예 처분은 재판 받을 권리도 침해하며 당사자에게 불명예스러운 범죄자 낙인을 남기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김승훈·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2011-01-10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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