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가족 생사확인·상봉 행사 정례화 등 놓고 진통끝 타결
무박(無泊) 4일의 판문점 남북 고위급 접촉에서 합의된 추석 계기 이산가족 상봉이 논의된 남북 적십자 실무접촉도 무박 2일의 마라톤협상 끝에야 합의점을 찾았다.남북 적십자 실무접촉은 7일 오전 10시50분께 판문점 남측 지역 평화의 집에서 예정보다 50분 늦게 시작됐다.
통일부 당국자는 “실무절차를 협의하는 문제로 시작시간이 예정(오전 10시)보다 조금 지연됐다”고 밝혔지만 북측 대표단이 늦게 도착한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
북한이 지난달 15일 한국시간보다 30분 늦은 ‘평양시’를 표준시로 채택한 점을 감안하면 ‘의도적 지각’일 수 있다.
그러나 평화의 집에 도착한 북측은 ‘회담 시간은 (평화의 집) 벽에 붙은 이 시계를 기준으로 하자’며 남측을 존중하는 태도를 보였다는 것이 회담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실무회담 시작 당시 남측 수석대표인 이덕행 대한적십자사 실행위원과 북측 수석대표인 박용일 조선적십자회 중앙위원회 중앙위원은 웃으며 악수를 나누는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하지만 협상은 팽팽한 줄다리기로 진행됐다.
우리 측은 노동당 창건 70주년(10월 10일)을 맞아 북한이 장거리 로켓을 발사할 가능성을 우려해 10월 10일 전후 상봉 행사를 개최하자고 주장한 반면 북측은 노동당 창건 행사 준비와 실무상 어려움 등을 이유로 다음 달 중순 이후 상봉 행사를 하자고 주장했다.
이 실행위원은 정부서울청사에서 가진 남북 적십자 실무접촉 결과 브리핑에서 남측이 제안한 상봉 일자를 묻는 질문에 “(10월 10일) 전도 있고 후도 있다”고 답했다.
이번 회담이 중간에 하루 쉬는 날을 두고 2박3일씩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될 예정이란 점을 감안하면, 이 실행위원의 발언은 우리측이 10월 10일 이전에 1차 상봉을, 10월 10일 이후에 2차 상봉을 갖자고 제안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북측은 상봉 행사 준비 등에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10월 하순 주장을 고수했다.
추석 계기 이산가족 상봉 행사 외에 우리 측이 제기한 ▲ 전면적인 이산가족 생사 확인 ▲ 이산가족 서신 교환 및 화상 상봉 ▲ 이산가족 고향방문 ▲ 상봉 행사 정례화 등 이산가족 문제의 근본적 해결 방안을 놓고도 양측은 진통을 겪었다.
과거 우리 정부가 전면적 이산가족 생사 확인을 요구했을 때도 북측은 행정적 어려움을 이유로 수용하지 않은 바 있다. 이산가족 상봉 행사의 정례화 등도 북측이 적십자 실무접촉에서 합의해 준 전례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회담 관계자는 “북측 역시 이산가족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선 남북한 이산가족의 전면적 생사확인이 가장 중요하다는 데 공감했으나, 이번 합의문에 관련 내용을 담는데는 현실적 어려움이 있다는 입장이었다”고 전했다.
결국 적십자 실무접촉은 대표단 전원이 참여하는 전체회의로 시작해 수석대표 접촉, 전체회의, 정회를 반복하며 8일 새벽으로 넘어갔다.
실무자 차원의 접촉이 이처럼 날을 넘겨가며 마라톤 협상으로 진행된 것은 이례적이다. 지난해 2월 이산가족 상봉을 앞두고 열린 적십자 실무접촉은 4시간 만에 마무리된 바 있다.
북측은 협상 중간에 수시로 평양과 의견을 조율한 것으로 알려졌다.
남북 대표단은 8일 새벽쯤 어느 정도 간극을 좁히는데 성공했고, 양측 사이에선 합의문 초안이 수차례 오갔지만 타결점이 쉽게 찾아지지 않았다고 한다.
이에 남과 북은 8일 아침 한때 정회를 검토했으나, 그대로 수석대표 협상을 재개했고 23시간20분 만인 8일 오전 10시10분께 최종 합의안을 도출했다. 최종 합의안 도출까지 남북은 전체회의와 총 11차례의 수석대표 접촉을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합의안에는 내달 20일부터 26일까지 7일간 금강산 면회소에서 남북 각각 100명 규모로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갖는다는 내용이 담겼다.
상봉 정례화와 생사확인 등 문제는 추후 남북 적십자 본회담에서 논의하기로 정리됐다.
결과적으로 상봉 행사 준비를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북측의 주장과, 이산가족 상봉 행사 외의 사안은 적십자 본회담이나 당국 회담에서 협의하자는 북측 입장이 상당 부분 반영된 셈이다.
이번 합의안에는 연내 추가 상봉 행사 계획 등은 포함되지 않았다.
회담 관계자는 “북측 여건상 11월을 넘기면 상봉이 불가능하다. 이산가족 대다수가 80대인 만큼 추위 속에 상봉 행사를 진행할 수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 등이 논의될 남북 적십자 본회담은 10월 20∼26일 금강산 상봉이 마무리된 뒤 개최될 전망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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