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1년] “안전정책은 현장·디테일 중시해야”

[세월호 참사 1년] “안전정책은 현장·디테일 중시해야”

입력 2015-04-06 15:09
수정 2015-04-06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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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 “재난대책 중심은 현장”…제2참사 막으려면 국민 참여 중요

”공중 화장실에 쓰여 있는 ‘휴지는 휴지통에’ 문구를 보고 이상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 없으세요?”

세월호 참사 1년을 앞두고 박희경 KAIST 재난학연구소장에게 국내 안전 대책을 물었더니 이런 질문이 돌아왔다.

박 소장은 “사실 양변기는 휴지를 버리라고 만든 것이고, 실제 외국에서는 그렇게 하고 있다”며 “그런데 우리는 양변기 문화를 급하게 들여와 대충 설치하는 바람에 휴지를 버리면 관이 막혀버린다”고 말했다.

휴지를 넣으면 막히는 양변기와 같이 우리 사회가 방치한 병폐와 부조리가 곳곳에 숨어 있고, 이런 적폐가 생활 속에 잠복해 있다가 언제든 우리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는 것이다.

”화장실이 그런데 다른 인프라는 어떻겠냐”라고 재차 물은 박 소장은 “잠재된 문제들이 계속 하나씩 터지고, 이를 수습하는 데에는 훨씬 큰 비용이 들어갈 것”이라고 지적했다.

세월호 참사와 같은 비극이 되풀이되는 것을 막으려면 정부에만 해결책을 맡길 것이 아니라 국민이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데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며, 그 기반은 현장이 돼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 “모든 걸 정부가 하는 게 문제”…정책의 중심은 ‘현장’

세월호 참사 이후 정부 기관들이 앞다퉈 수많은 대책을 쏟아냈지만 정작 전문가들은 “모든 것을 정부가 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시민사회가 스스로 안전을 진단하고 문제를 개선해나갈 수 있는 모델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여기서 안전 문제는 재해와 사고뿐만 아니라 범죄, 자살, 교통사고 등 생활 속 모든 문제를 포괄한다.

이재은 충북대 행정학과 교수는 “모든 것을 정부가 하려고 하는 게 안타깝다”며 “지방자치단체와 시민단체, 기업 등 정부-시민-시장의 세 주체가 스스로 안전 문제를 찾아내고 치유하는 ‘안전 거버넌스’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같은 맥락에서 매뉴얼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페이퍼 플랜 신드롬’(Paper plan syndrome)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도식적인 모형에 집착하면서 매뉴얼만 만들면 그만이라는 착각에 빠져 현장에서 어떻게 활용되는지는 고민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원신 인천 소방안전학교 교수연구단장은 “그동안 현장을 소홀히 하고 행정 인력 중심으로만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었다”며 “현장의 중요성을 무시하고 소중한 사람의 생명을 숫자로만 따지는 문화에서는 안전 담당자에게 현장에서 사망자가 한둘 늘었다고 해도 자신의 업무와는 크게 상관없는 일이 된다”고 지적했다.

◇ ‘국민 합의’ 중요’디테일’을 보여줘야

안전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국민이 공감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사회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박희경 소장은 “정부 차원에서 시설물 안전진단을 대대적으로 하는 것보다는 국민에게 정보를 잘 줘서 스스로 불안한 곳을 조금씩 고쳐가는 ‘참여형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범순 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는 “미국에서는 1986년 챌린저호 폭발 사태 이후 연구 결과물을 대학교육 교재로 활용했다”며 “이를 통해 왜 사고가 일상화됐는지 그 책임소재와 국가의 역할 등을 고민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학교, 병원, 언론사 등 조직의 특성에 맞는 안전 및 위기관리도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일례로 미국의 각 대학은 자체적으로 대규모 재난이나 테러에 대응하는 조직과 매뉴얼을 갖추고 전담요원들이 위기관리 방법을 연구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안전문화 확산’ 등 명목으로 홍보만 할 것이 아니라 체계적인 교육으로 개인이 안전을 체화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왔다.

방재 전문가 조원철 연세대 명예교수는 “안전을 생활 습관으로 만드는 것이 결코 어렵게만 생각할 일은 아니라”라고 강조했다.조 교수는 “현장에서 시민들이 살아남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가르쳐줘야 한다”며 그 자신이 늘 주머니에 넣고 다닌다는 비닐봉지를 예로 들었다.

지하철이나 건물 등 밀폐된 공간에서 불이 났을 때 코와 입을 막아 응급 산소마스크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비닐봉지를 챙겨다니는 것이 결코 손해 보는 일이 아니라고 알려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간단하고 별것 아닌 것 같은 작은 것들이 위급한 상황에서는 엄청난 도움이 된다”며 “쉬운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케히로 다카모토 동경대 교수는 지난 4일 인천에서 열린 ‘국제해양재난안전학술포럼’에서 “세월호 참사는 안전관리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서 발생한 것이라고 본다”며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은 선박회사, 선원, 정부가 ‘안전’을 문화수준까지 끌어올리지 못한 데 원인이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일본의 해난사고는 더 늘지도 줄지도 않은 ‘성숙기’ 상태”라며 “국제규격에 맞는 안전관리시스템 도입과 안전교육·훈련을 통해 선박회사, 선원, 정부의 ‘안전 수준’을 끌어올렸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 쉽게 잊어서는 안 돼…급하게 가지 말자

1년 전 참사는 정부에게는 재난 안전 대책과 위기관리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계기가, 국민에게는 물질적 풍요보다도 사람의 생명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 전환점이었다.

이런 교훈을 자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참사 자체를 쉽게 잊어서는 안 된다고 박범순 교수는 강조했다.

박 교수는 “과거 사건·사고·재난은 ‘압축 성장의 결과물’로, 성장위주 사회가 지속하다 보니 성찰이나 반성이 철저히 이뤄지지 않아 비극이 반복됐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해양경찰 해체와 국가안전처 신설 등 정부가 조직개편을 서두른 데 대한 지적도 나왔다.

공길영 한국해양대 항해시스템공학부 교수는 “선진국은 우리처럼 심층적 연구 없이 서둘러 정부조직을 개편하지 않는다”면서 “정부는 사고 원인을 파악하는 것도 서둘렀는데, 일본은 선박사고가 났을 때 사고 원인을 파악하는 데만 1년 반이 소요된다”고 전했다.

이영재 동국대 교수는 ‘국제해양재난안전학술포럼’에서 “바다에서 사고·재난이 발생하면 해양수산부, 소방당국, 지자체 등 각 주체의 유기적인 대응·협업이 중요한 데 우리는 미흡한 실정”이라고 지적한뒤 “국민안전처에서 재난·사고 위기관리매뉴얼을 만드는 데 해양 관련 기관·전문가의 참여가 부족하며, 이대로 매뉴얼이 완성된다면 그것은 종이책에 불과하다”며 해양 관련 기관과 전문가의 참여를 호소했다.

안전을 위한 장기적 과제로 부정부패 해소도 제시됐다. 박희경 소장은 “세월호 참사의 핵심 요인은 유벙언 일가의 정관계 유착과 부정이었다”며 “불투명한 비즈니스 관계에서 부조리가 만들어지고 사고가 나오는 법인데, 이를 해소하지 않으면 안전도 지키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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