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시 남원읍 위미리동백군락. 제주 강동삼 기자
현맹춘 할머니가 바람을 막기 위해 한라산에서 동백 씨앗을 따다가 황무지였던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리에 뿌려 동백군락지가 됐다. 제주 강동삼 기자
동백꽃은 나무에서 한 번, 땅에서도 한 번. 살아서 한 번, 죽어서도 한 번 피는, 두 번 피는 꽃이다.
특히 하얀 겨울에 핀 붉은 동백꽃은 시리도록 아름답다. 한 잎 한 잎 떨어지며 시들어가는 꽃들과는 달리, 동백꽃은 가장 싱싱할 때, 온전한 모습을 띤 채 꽃봉오리째로 뚝 떨어진다. 생명을 다하는 순간까지 꽃잎은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그래서 두번 피는 꽃으로 불린다.
제주도는 유달리 동백꽃을 많이 심는다. 시골 집에 동백나무 하나 정도 심지 않은 집이 없고, 과수원 담벼락에도 동백나무로 방풍림 역할을 하는 곳이 많다. 귤나무 만큼 많고 흔하다. 그러나 동백(Camellia)은 ‘그 누구보다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꽃말을 갖고 있지만, 때론 순결, 그리움, 절조라는 꽃말도 지니고 있다. 하지만 그런 동백에는 슬픈 사연이 많은 꽃이다. 특히 제주에서 동백꽃은 4·3의 아픔이 묻어 나온다. 떨어지는 꽃잎은 마치 4·3의 희생자의 넋 같단다.
겨울에서 봄으로 가는 길목에 선 제주는 동백꽃이 한창이다. 설 연휴 제주를 찾았다면 동백꽃으로 유명한 명소 한군데쯤은 가볼만한 가치가 있다. 탐나는 제주의 동백꽃 스팟을 소개해본다.
1월말부터 조금씩 피기 시작하고 있는 남원읍 신흥2리 동백마을 골목길 동백숲. 제주 강동삼 기자
#남원읍 신흥2리 동백마을엔 300그루 동백숲… 비누기 만들기·음식체험은 덤제주에서 동백꽃으로 아름다운 곳은 단연 서귀포시 남원읍을 빼놓을 수 없다. 신흥2리 동백숲, 동백수목원, 동백포레스트, 위미리 동백군락 등이 몰려 있다. 그 가운데서도 동백마을로 불리는 서귀포시 남원읍 신흥2리는 300년이 넘은 신흥동백나무군락을 품은 마을로 1월말부터 4월초까지 마을 길은 온통 붉은 빛이다.
이곳은 1706년(숙종 32년) 광산김씨 입도시조 12세손 사형제 중 김명환씨가 정착해 당시 방풍림으로 동백나무를 심었다고 전해진다. 설촌 당시 방풍림 용도로 심은 동백나무들은 어느덧 300여년의 역사를 품고 있다. 이곳 동백마을 숲은 1973년 4월 3일에 보호 가치성이 높아 제주도 지방기념물 27호로 지정됐다. 제8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전통마을숲 부문 어울림상과 제10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 아름다운 숲지기상 수상과 함께 마을주민과 서귀포시가 협력해 2009년에 개인소유의 토지를 공유화했다. 숲 속 데크길을 한바퀴 돌다보면 300년된 팽나무 보호수도 만날 수 있다.
아쉬운 점은 길거리 동백나무들이 토종동백이 많아 아직 꽃봉오리가 올라오지 않았다. 현재는 경흥농원 입구에서 절정을 맞은 동백꽃을 문틈 너머로 고개를 내밀고 보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랜다.
신흥2리 노인회관에 주차하고 동백정원에서 한컷 찍고 올레 안쪽 길 동백숲(동백 군락)을 산책해도 좋다. 제주도는 부인들의 머릿기름을 동백기름으로 써 윤기나는 머릿결을 유지하느라 집 울타리에 많이 심었다. 제주 토종 동백나무에서 얻어진 동백을 이용한 비누 만들기, 화장품(오일, 스킨) 만들기, 공예체험, 동백 숲 탐방과 함께 동백 음식체험까지 즐길 수 있다.
위미리 동백수목원. 제주 강동삼 기자
서귀포시 남원읍 생기악로 53-38 동백포레스트. 하귤나무와 동백숲이 한폭의 그림처럼 펼쳐지는 곳이다. 제주 강동삼 기자
동백포레스트. 제주 강동삼 기자
남원읍 원님서로 56 중산간마을에 위치한 훈식이네 동백밭은 홍보를 위해 1년간 무료 개방하고 있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동백정원. 제주 강동삼 기자
#현맹춘 할머니가 뿌린 위미리 동백나무 군락과 동백수목원, 훈식이네 동백밭, 동백포레스트의 남원서귀포시 남원읍 위미리에는 제주도기념물 제39호로 지정된 동백나무 군락지도 있다. 이 동백나무 숲은 황무지를 옥토로 가꾸기 위하여 끈질긴 집념과 피땀 어린 정성을 쏟은 한 할머니의 얼이 깃든 유서 깊은 곳이다.
150년 전 이 마을로 시집온 현맹춘(1858-1933) 할머니는 17세 되던 해 이 마을로 시집 와서 해초를 캐고 품팔이를 하며 평생 어렵게 모은 돈으로 황무지 (속칭 버득)를 사들였다. 그리고 모진 바람을 막기 위해 한라산의 동백 씨앗을 따다가 뿌려 지금처럼 울창한 숲을 이뤘다. 현재 동백나무 약 500그루가 조성돼 있으며 가장 큰 나무는 둘레 1.4m에 높이는 10m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제주도 기념물(문화재) 제39호로 지정돼 보호되고 있으며 현재도 동백나무를 식재해 탐방로를 조성중이어서 내부를 개방하지 않고 있다. 올레 한바퀴를 돌면서 내부에 심어진 동백나무에 핀 붉은 꽃들을 돌담 넘어 찍어보는 수밖에 없다. 산책할 수 없는 아쉬움은 인근 동백수목원에서 달래도 그만이다.
남원읍 위미리 동백수목원(위미리 929-4)은 동글동글한 애기동백나무가 심어져 있는 동백 군락지이다. 붉은 꽃잎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셔도 좋을 듯 싶다.
중산간마을 쪽에는 동백포레스트(서귀포시 남원읍 생기악로 53-38)도 생겼다. 안내 책자에는 애기동백나무로 조성되어있는 동백군락지로 수령 40여년 동백나무들이 본래 심어져 있던 자리에서 시간이 흐르면서 숲을 이루게 됐다. 11월에 꽃을 피워 2월까지 분홍빛 동백을 선사한다. 1월말쯤인 지금이 절정이다. 이곳은 둥글둥글 동백꽃길 사이로 하귤나무가 심어져 있어 노란 하귤열매와 함께 인생샷을 찍는 관광객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입구에는 동백 카페가 있어 차 한잔의 여유를 만끽할 수 있다. 주차장 초입에는 아꼬아 체험농장과 함께 동백모양의 동백빵, 어묵, 싱싱한 귤을 파는 매점도 있어 간단히 허기를 달래도 좋다.
입장료를 생각한다면, 홍보차원에서 1년동안 무료 개방하고 있는 ‘훈식이네 동백밭’을 놓치면 후회한다. 다소 주차공간이 넓지 않은 단점이 있지만, 주차 안내하는 아저씨가 실컷 구경하라며 마음씨 좋게 인사한다. 전망대도 중간 중간에 설치돼 있어 파란 하늘을 벗삼아 핀 장미보다 더 붉은 동백꽃에 취한다. 두번 피는 꽃이 아니라 생과 사를 동시에 만나는 꽃 같다. 레드카펫을 걷는 황홀한 기분은 이곳이 최고다.
제주4·3평화기념관 마당 핀 특이한 동백꽃 조형물. 제주 강동삼 기자
# 제주4·3평화공원 동백꽃은 4·3 희생자들의 넋제주시 봉개동에 위치한 제주 4·3 평화공원은 4·3 사건 당시의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한 공간이다. 제주4·3평화기념관 마당에는 특이한 동백꽃이 피어 있다. 희생자들의 영혼을 상징하는 동백꽃 조형물. 시들기도 전에 속절없이 ‘툭’하고 떨어지는 토종동백꽃은 제주에서 4·3사건 당시 희생된 영혼을 상징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4·3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만들어진 배지 모양도 동백꽃이다. 4월이 되면 도민들은 누구나 이 동백 배지를 가슴에 단다. 그날을 잊지 않고 기억하려 한다. 제주4·3희생자추념일에 동백을 보러 왔다가 흩날리는 벚꽃에 반하기도 한다.
동백이 제주 4·3의 상징 꽃으로 이미지를 얻기 시작한 것은 강요배 화백의 4·3연작시리즈인 ‘동백꽃 지다’의 표지화 및 작품이 1992년 세상에 공개되면서부터다. 4·3 당시 제주 곳곳에서 소리없이 희생된 이들의 모습이 꽃송이째로 차가운 땅에 떨어진 동백꽃을 연상케 한단다. 4·3 사건 70주년을 맞은 2018년에 제주도 차원에서 동백꽃 추모배지를 제작해 배포했다. 4·3평화공원에는 4·3 유족과 도민이 기증한 것을 포함한 500그루 넘는 동백나무가 서 있다.
평화로 캐슬렉스 제주 옆 도로 동백꽃 포토존. 제주 강동삼 기자
나무에서 한 번, 땅에서도 한 번. 살아서 한 번, 죽어서도 한 번 피는, 두 번 피는 꽃인 동백꽃. 한라수목원내 동백나무숲. 제주 강동삼 기자
안덕면 카멜리아 힐에서 만난 동백꽃잎. 제주 강동삼 기자
#살아서 한번, 죽어서 한번 두번피는 꽃 명당은 또… 카멜리아 힐, 숨도, 캐슬렉스CC 도로 포토존추위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피는 동백꽃은 을씨년스러울 수 있는 제주의 겨울에 선물같은 존재다. 진녹색의 나뭇잎, 새하얀 눈과 대비되는 붉디붉은 꽃잎을 보노라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특히 제주의 남쪽 서귀포 지역은 어디를 가도 동백이 인사를 하고 동백이 말을 건넨다. 동백꽃 필 무렵에는 당신의 볼마저 부끄러움을 타듯 붉게 달아오른다. 남원읍 뿐 아니라 서귀포 상효원, 안덕면 카멜리아힐, 파더스가든도 동백 명당으로 손색이 없다.
이외에도 서귀포시에 위치한 제주형 생태정원 ‘숨도’(엣 석부작박물관), 호근동 동백길(호근동 1321-5), 수망리 동백길(남원읍 원님로 233)는 한라산 정상의 하얀 설경을 배경삼아 동백꽃을 담을 수 있다. 9코스 올레길을 걷다가 만나는 한밭마을의 동백 골목길, 평화로 캐슬렉스 제주 CC 동백 돌담(평화로 1241), 제주시 한라수목원 동백숲도 인생 샷 명당이 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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