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먼저 간 남편에게 인사가는 날”…일본도 살인사건 유족의 슬픈 설날

[단독]“먼저 간 남편에게 인사가는 날”…일본도 살인사건 유족의 슬픈 설날

김우진 기자
김우진 기자
입력 2025-01-26 15:36
수정 2025-01-26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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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가 직접 마련한 ‘첫 집’ 앞에서 벌어진 참극
아내 “평범했던 일상 사라져…사형 선고돼야”
검찰, 사형 구형…선고는 다음 달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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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같은 아파트 주민인 백모(38)씨가 휘두른 일본도에 살해당한 피해자 수목장에 걸린 피해자의 첫째 아들이 쓴 편지.  유족 제공
지난해 같은 아파트 주민인 백모(38)씨가 휘두른 일본도에 살해당한 피해자 수목장에 걸린 피해자의 첫째 아들이 쓴 편지.
유족 제공


“이제 설날은 온 가족이 모여 웃고 떠드는 날이 아니라 먼저 간 남편에게 인사하러 가는 날이 됐어요.”

지난해 7월 서울 은평구의 한 아파트에서 이웃 주민이 휘두른 일본도에 목숨을 잃은 피해자의 아내 김모(40)씨는 지난 23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아이들이 처음으로 아빠 없는 설을 보내게 됐다”고 했다. 매년 설 명절 연휴 찾아가던 시댁에도 올해는 가지 않기로 했다. 시댁 식구들의 얼굴을 마주하면 남편 생각이 커질 것 같아서다. 이번 연휴에는 남편이 묻힌 곳에 가서 아이들과 인사를 하고 올 예정이다.

김씨는 “지난해 설까지만 해도 남편과 전을 부치면서 서로 ‘내가 더 잘한다’며 장난치던 게 기억난다”며 “명절 음식을 먹으면서 가족이 함께한, 평범했던 일상은 이제 사라졌다”고 했다.

자기 전이면 담배를 피우는 신랑은 그날도 “다녀올게”라며 나갔다. 그때 본 뒷모습이 남편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깨질듯한 구급차 소리에 베란다를 내다본 건 불과 몇 분 후였다. 어떤 남자가 쓰러져 있길래 문득 남편이 떠올라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전화 버튼을 연신 눌렀다. ‘제발 받아라.’ 그 순간 낯선 남자가 전화를 받곤 말했다. “남편 많이 다쳤어요. 빨리 내려오세요.”

구급대원 뒤로 신발도 신지 않은 다리가 보였다. “제 남편 아니에요. 남편은 신발 신고 나갔어요.” 구급대원은 남편이 피를 많이 흘려 구급차는 따로 타야 한다며 아내를 차에 태웠다. 김씨는 지금도 당시를 후회한다. “마지막으로 얼굴이라도 볼 걸 그랬어요. 같이 있어 줄 걸.” 남편의 유일한 낙인 담배를 차마 끊으라고 하지 못한 자신도 원망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지 6개월이 지났지만 김씨는 여전히 현실이 믿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사건 이후 김씨는 칼이 두려워 요리조차 하지 못했고, 첫째 아이는 불안이 커져 홀로 엘리베이터를 타지 못한다. 김씨는 “남편이 쓰러진 모습이 보였던 창문을 가리기 위해 지금도 매일 커튼을 쳐놓고 산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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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주민에게 일본도를 휘둘러 숨지게 한 백모(38)씨가 지난해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법으로 들어서는 모습. 백씨는 이날 ‘피해자에게 미안한 마음이 없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없다”고 답했다. 연합뉴스
이웃 주민에게 일본도를 휘둘러 숨지게 한 백모(38)씨가 지난해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법으로 들어서는 모습. 백씨는 이날 ‘피해자에게 미안한 마음이 없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없다”고 답했다.
연합뉴스


김씨의 남편은 지난해 7월 약 102㎝의 일본도를 골프 가방에 넣어 다니던 이웃 주민 백모(38)씨에 의해 살해당했다. 백씨는 경찰 조사에서 ‘중국 스파이가 대한민국에 전쟁을 일으키려고 한다’는 망상에 빠져 범행을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지난 21일 백씨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김씨는 남편을 죽인 백씨에게 아직 사과 한마디조차 듣지 못한 게 가장 억울하다고 했다. 김씨는 “백씨가 심신미약을 주장하고 있는데 이런 어처구니없는 주장이 법원에서 받아들여질까 봐 두렵다”고 했다. 이어 “그날 그곳에 다른 주민이 있었다면 그 사람이 희생당했을 거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며 “꼭 사형이 선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편이 쓰러진 그 장면이 보이는 집은 부부가 마련한 ‘첫 집’이었다. 둘째도 그 집에서 찾아왔다. 가족은 곧 그곳을 떠난다. 김씨는 “신혼 때부터 열심히 일해 어렵게 마련했던 가족 보금자리지만 남은 추억이 너무 아파 떠나려 한다”고 했다.

남편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묻자 한참을 침묵하던 김씨는 어렵게 입을 열었다.

“사랑하는 남편, 아프게 보내서 미안해. 당신 몫까지 아이들 더 많이 사랑하면서 씩씩하게 살게. 하늘에서 우리 아이들 꼭 지켜줘.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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