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재미마저 빼앗진 마세요”

“책 읽는 재미마저 빼앗진 마세요”

입력 2011-12-26 00:00
수정 2011-12-26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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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자책·도서관 태부족… 열악한 환경에 우는 시각장애인들

서울 강서구 가양동에 사는 시각장애인 고계자(82) 할머니는 5년 전 인근 공항동의 강서점자도서관에서 점자를 배웠다. 이후 소설을 비롯, 책 읽는 재미에 푹 빠졌다. 그러나 거동이 불편해 집에서 멀리 떨어진 도서관을 오가는 일은 여간 어렵지 않았다. 고 할머니는 “가까운 곳에서 책을 읽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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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들은 책 한권 읽기도 어렵다. 출판사들은 비용 탓에 점자책 제작을 꺼리고 정부는 점자책을 보급하는 점자도서관 운영에 나서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무관심에 일반 도서관들이 직접 점자책을 만들고 있지만 재정부족으로 허덕이고 있다. 시각장애인들의 정보접근권을 위한 정부 차원의 대책이 절실한 이유다.

시각장애인들에게 필요한 점자책을 빌려주는 점자도서관은 전국적으로 40곳 정도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정부 차원에서 운영하는 곳은 없다. 일반 도서관이나 복지관 안에 ‘장애인 도서실’로 관리될 뿐이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을 받기는 하지만 이마저도 해마다 수천만원 정도에 그쳐 후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대여할 수 있는 점자책도 턱없이 부족하다. 해마다 출판되는 책 5만여종 가운데 점자책은 2~3% 정도에 그치고 있다. 점자책 한 권을 만드는 비용이 일반책의 4~5배 정도에 이르는 탓에 출판사들이 외면해서다.

때문에 도서관들이 점자책 제작까지 도맡고 있다. 그러나 책의 디지털 파일만 있으면 몇 분 만에 점자책을 만들 수 있는데도 출판사들은 유출을 우려, 파일 제공을 꺼리고 있다. 도서관들은 수작업으로 점자책을 만들 수밖에 없는 처지다. 서울 강서점자도서관에서 근무하는 이상웅씨는 “자원봉사자들을 선발해 한 글자씩 일일이 컴퓨터에 입력해 점자로 변환하는 식으로 책을 제작하고 있어, 한 해에 500권도 만들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회에서의 움직임도 더디다. 국립중앙도서관 내 장애인도서관지원센터의 기능을 확대해 국립장애인도서관을 설립한다는 내용을 담은 도서관법 개정안은 지난 23일 폐기됐다. 국가 및 지자체가 시각장애인 등을 위한 도서관을 설립한다는 내용을 담은 독서장애인도서관진흥법안은 2009년 발의됐지만 여태껏 계류 중이다.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김두현 대외협력실장은 “출판사들이 제공한 디지털 파일을 장애인을 지원하는 전문기관에 위탁해 출판사들의 파일 유출 우려를 덜어주고, 국가나 지자체 차원에서 점자도서관을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소라기자 sora@seoul.co.kr

2011-12-26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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