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간의 기다림이 물거품이 된 현실에 천안함 실종자 가족들은 모두 할 말을 잃었다. 그중에서도 유독 주위를 안타깝게 하는 사연을 가진 이들이 있었다.
☞[사진]우리는 영웅들을 기억한다…천안함 순직·희생자
“전쟁터에서도 살아온 사람이 왜 이렇게 어이없이….” 제2 연평해전의 용사 박경수 중사의 가족들은 “해전 이후 6년이나 배를 타지 못하다 1년 전에 간신히 타기 시작했는데 이렇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면서 “남들이 평생 한번 겪기도 힘든 일을 두 번이나 겪고 가 너무 불쌍하다.”고 애통해했다.
누나를 셋이나 둔 이상민 병장은 집안의 자랑이자 효자였다. 가족들은 제대를 불과 한 달 보름 정도 남긴 채 배에 올랐던 막둥이를 하염없이 불렀다. 누나 상희(28)씨는 “동생이 나이가 스무살이 넘어서도 엄마한테 안기는 걸 좋아했다.”면서 “요즘 젊은 애답지 않게 엄마 디스크 수술비에 보탠다고 아르바이트를 해서 300만원을 마련해 주고 입대했다.”고 말했다. 이 병장의 생일이었던 지난달 13일에는 가족들이 함께 면회를 왔었다. 2년간 한 번도 면회를 오지 못하다 어머니가 처음으로 아들을 찾아 평택에 온 것은 사고가 난 다음날이었다.
5월의 신부가 될 뻔했던 강준 중사의 아내 박현주(30)씨도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강 중사와 경남 진해에서 함께 일했던 해군 최초의 여성부사관인 박씨는 올 5월3일 결혼할 예정이었다. 정종률 중사의 아들 주환이의 사발면 역시 주인을 잃었다. 주환이는 실종자 가족들이 대기하던 해군 2함대 예비군 훈련장 숙소에서 부대 측이 제공한 사발면을 “아빠가 돌아오면 주겠다.”면서 차곡차곡 모아 왔다. 철 모르는 아들 때문에 계속 눈시울을 붉혔던 정 중사의 부인 정경옥(34)씨는 “진해로 근무지 발령이 난 상황에서 마지막으로 천안함에 올랐다가 변을 당했다.”고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지난해 결혼한 최정환 중사는 자신의 큰 손과 몸집에 지난 1월 태어난 딸이 다칠세라 제대로 안아주지도 못하는 여린 아버지였다. 또 딸이 크는 것을 보고 싶어 천안함을 마지막으로 함상 근무를 접고 육상 근무를 자원한 상태여서 가족들의 슬픔은 더했다.
문규석 중사의 사촌형 강석(44)씨는 “규석이가 두 딸이 눈에 밟혀 눈이나 제대로 감았는지 모르겠다.”고 서러워했다. 문 중사는 사고가 나기 5분 전 초등학교 4학년인 큰딸에게 전화를 걸었고, 딸은 아버지의 마지막 전화를 받지 못했다.
이날 남은 희생자 중 가장 먼저 발견된 서대호 하사의 어머니 안민자(52)씨는 “아들이 ‘남자라면 육군 말고 해병대 정도는 가야죠.’라는 말을 남기고 해군에 입대했는데 이런 일을 당했다.”고 안타까워했다.
김동진 하사의 어머니 홍수향(45)씨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사진 속에서 김 하사는 해군 정복을 입은 채 늠름하게 홍씨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홍씨는 “우리 아들은예. 여자도 몰라예. 결혼도예. 엄마가 찍어준 여자하고 한다고 했어예.”라고 말했다.
박건형 김양진기자 kitsch@seoul.co.kr
☞[사진]우리는 영웅들을 기억한다…천안함 순직·희생자
“전쟁터에서도 살아온 사람이 왜 이렇게 어이없이….” 제2 연평해전의 용사 박경수 중사의 가족들은 “해전 이후 6년이나 배를 타지 못하다 1년 전에 간신히 타기 시작했는데 이렇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면서 “남들이 평생 한번 겪기도 힘든 일을 두 번이나 겪고 가 너무 불쌍하다.”고 애통해했다.
누나를 셋이나 둔 이상민 병장은 집안의 자랑이자 효자였다. 가족들은 제대를 불과 한 달 보름 정도 남긴 채 배에 올랐던 막둥이를 하염없이 불렀다. 누나 상희(28)씨는 “동생이 나이가 스무살이 넘어서도 엄마한테 안기는 걸 좋아했다.”면서 “요즘 젊은 애답지 않게 엄마 디스크 수술비에 보탠다고 아르바이트를 해서 300만원을 마련해 주고 입대했다.”고 말했다. 이 병장의 생일이었던 지난달 13일에는 가족들이 함께 면회를 왔었다. 2년간 한 번도 면회를 오지 못하다 어머니가 처음으로 아들을 찾아 평택에 온 것은 사고가 난 다음날이었다.
5월의 신부가 될 뻔했던 강준 중사의 아내 박현주(30)씨도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강 중사와 경남 진해에서 함께 일했던 해군 최초의 여성부사관인 박씨는 올 5월3일 결혼할 예정이었다. 정종률 중사의 아들 주환이의 사발면 역시 주인을 잃었다. 주환이는 실종자 가족들이 대기하던 해군 2함대 예비군 훈련장 숙소에서 부대 측이 제공한 사발면을 “아빠가 돌아오면 주겠다.”면서 차곡차곡 모아 왔다. 철 모르는 아들 때문에 계속 눈시울을 붉혔던 정 중사의 부인 정경옥(34)씨는 “진해로 근무지 발령이 난 상황에서 마지막으로 천안함에 올랐다가 변을 당했다.”고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지난해 결혼한 최정환 중사는 자신의 큰 손과 몸집에 지난 1월 태어난 딸이 다칠세라 제대로 안아주지도 못하는 여린 아버지였다. 또 딸이 크는 것을 보고 싶어 천안함을 마지막으로 함상 근무를 접고 육상 근무를 자원한 상태여서 가족들의 슬픔은 더했다.
문규석 중사의 사촌형 강석(44)씨는 “규석이가 두 딸이 눈에 밟혀 눈이나 제대로 감았는지 모르겠다.”고 서러워했다. 문 중사는 사고가 나기 5분 전 초등학교 4학년인 큰딸에게 전화를 걸었고, 딸은 아버지의 마지막 전화를 받지 못했다.
이날 남은 희생자 중 가장 먼저 발견된 서대호 하사의 어머니 안민자(52)씨는 “아들이 ‘남자라면 육군 말고 해병대 정도는 가야죠.’라는 말을 남기고 해군에 입대했는데 이런 일을 당했다.”고 안타까워했다.
김동진 하사의 어머니 홍수향(45)씨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사진 속에서 김 하사는 해군 정복을 입은 채 늠름하게 홍씨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홍씨는 “우리 아들은예. 여자도 몰라예. 결혼도예. 엄마가 찍어준 여자하고 한다고 했어예.”라고 말했다.
박건형 김양진기자 kitsch@seoul.co.kr
2010-04-16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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