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터 ‘메신저’역할 가능성 차단…北 반응 주목
정부가 26일 지미 카터 전(前) 미국 대통령의 평양 방문에 대해 확실한 선 긋기에 나섰다.단순히 개인 차원의 방북이라고 의미를 축소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카터 전대통령이 잠재적 ‘메신저’ 역할을 수행할 가능성을 사전 차단하고 나선 형국이다.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26일 내ㆍ외신 정례브리핑에서 “북한이 굳이 제3자를 통해 우리와 얘기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는 개인적 견해임을 전제로 한 발언이기는 하지만 이는 카터 방북에 대한 정부 내부의 정리된 입장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다시 말해 북한이 카터 전대통령이라는 제3자를 통해 대남 메시지를 전달하더라도 이를 ‘진정성있는’ 북한의 입장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정부 핵심당국자는 “서로 할 말이 있다면 직접 만나서 해야지 제3자를 통해서 한다면 진정성이 있다고 볼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북한이 ‘우회로’를 타지 말고 남북 당국간 대화채널을 통해 직접 천안함ㆍ연평도 사건과 남북 비핵화 회담에 대한 입장을 표명하라는 취지다.
김 장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이미 우리 측과 여러 대화채널이 열려 있는 상황이고 북한 매체를 통해 ‘우리 민족끼리’를 얘기하고 있지 않으냐”고 말했다.
정부의 이 같은 입장 정리는 북한이 카터 전대통령 카드를 악용해 현 국면을 ‘어물쩍’ 넘어가려고 할 가능성이 있다는 상황인식에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
국제적으로 명망 있는 원로인사들을 대상으로 “천안함 사건은 특대형 모략극이고 연평도 포격은 남측이 연평도를 도발의 근원지로 만들었기 때문”이라는 식으로 자신들의 입장을 선전하면서 국제사회의 여론을 호도할 가능성이 작지 않다는 게 정부 당국자들의 시각이다.
여기에 과거 ‘평화 전도사’ 역할을 자임하며 돌출행동을 했던 카터 전대통령의 성향을 감안할 때 상황이 더 커지기 전에 미리 확실한 선을 그어두는 것이 유리하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우리 정부의 분명한 메시지가 전달되면서 북측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주목된다.
카터 방북의 의미를 축소하려는 우리 정부의 입장을 확인한 김 위원장으로서는 카터 전대통령 일행과의 면담을 의례적 수준에서 응할 가능성이 있지만 전직 국가수반 4인의 방북이 갖는 상징적 의미를 고려할 때 모처럼의 ‘카드’를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란 분석도 적지 않다.
외교가 일각에서는 카터 전대통령이 김 위원장으로부터 의외로 ‘무게감 있는’ 메시지를 들고 올 경우 우리 정부의 대응이 쉽지 않은 상황이 조성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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