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트럼프는 절대적 선두주자”, 트럼프 “그(푸틴)와 잘 지낼 수 있다”
미국 공화당의 유력 대선주자인 도널드 트럼프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서로에게 묘하게 끌리는 듯하다.일면식도 없는 두 사람이 마치 마음을 통한 ‘지음’(知音)처럼 서로를 향해 강력한 호감을 표시하고 있어서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17일(현지시간) 모스크바에서 내외신 기자들이 대거 집결한 가운데 열린 연말 기자회견에서 트럼프를 향해 “아주 활달하고 재능있는 사람”이라고 칭찬했다고 이타르타스 통신 등이 보도했다.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는 미국 유권자들이 누구를 (대통령으로) 뽑든지 협력하고 싶다”고 단서를 달기는 했지만, 콕 집어 거론한 대선 후보는 트럼프가 유일하다.
푸틴은 트럼프를 “특출나고 의심할 여지 없이 재능있는 인물”이라고 거듭 강조한 뒤, 현재 미국 대선 레이스를 이끌어가는 ‘절대적인 선두주자’(absolute leader)라고까지 평했다.
그는 “트럼프는 러시아와 더 긴밀하고 깊이 있는 수준의 관계로 이행하기를 바란다고 말하고 있는데 우리가 그같은 발언을 환영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면서 미·러 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를 표시했다.
이에 대해 트럼프는 즉각 성명을 내고 “자기 나라 안팎에서 매우 존경받는 분에게 그런 칭찬을 받는 것은 언제나 대단한 영광”이라고 화답했다.
그는 “나는 항상 미국과 러시아가 테러리즘과 싸우고 세계 평화를 회복하는 데 서로 잘 협력해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물론 양국간 무역이나 상호 존중에서 나오는 다른 이점들은 말할 필요도 없다”고 밝혔다.
푸틴이 이처럼 트럼프에 강력한 호감을 표시한 정확한 속사정은 알 길이 없지만, 일단 대(對) 러시아 정책과 시리아 사태를 놓고 자신의 편을 들어주는 유일한 미국의 대선 후보가 트럼프이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트럼프를 제외한 공화당 대선 후보 대다수는 푸틴을 ‘깡패’(gangster) 나 ‘폭력배’(thug)로 묘사하면서 악마 취급하기에 바쁘다.
특히 국제무대에서 러시아를 고립화해야 한다는 기조 속에서 시리아 사태와 관련해 러시아의 개입을 배제하는 쪽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는 예외다. 트럼프는 지난 9월 대선 TV토론에서 미국이 반대하는 시리아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에 군사 지원을 하는 러시아를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질문에 “푸틴 대통령과 얘기할 것이고 잘 지낼 것”이라고 답하기도 했다.
그는 “나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와는) 다른 길을 택할 것이고, 이 나라가 지금 관계를 잘 못하고 있는 세계 각국의 많은 지도자와 잘 지낼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인터뷰에서도 “푸틴은 오바마를 전혀 좋아하지 않고 존경하지 않고 오바마도 푸틴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고 확신한다”며 “그러나 나는 푸틴과 잘 지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미국과 러시아 관계는 지난해 러시아의 인권 문제에 대한 미국의 꾸준한 문제 제기와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해 급격히 악화했다.
트럼프는 또 지난 9월 미국 CBS 방송의 시사프로그램 ‘60분’(60 Minutes)에서 각자 녹화한 인터뷰가 같은 날 방송됐던 점을 거론하며 “우리는 ‘60분’에 함께 나온 동료였다. 그날 밤 우리는 아주 잘했다”고 푸틴에 대한 호감을 드러냈다.
트럼프는 특히 시리아 사태를 놓고는 푸틴의 적극적 개입을 지지했다.
트럼프는 “만일 푸틴이 시리아에서 ‘이슬람국가’(IS)를 쓰러뜨리겠다고 한다면 나는 100% 지지할 것”이라며 “러시아가 IS를 제거하도록 해야 한다. 우리가 뭘 신경 쓰느냐”고 말했다.
미국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시리아 사태 해결 과정에서 역할을 확대해보려는 푸틴으로서는 매우 고무적인 발언이 아닐 수 없다.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해 호감을 표시하는 데에는 단순히 정책적 입장을 떠나 개인적 성향과 스타일이 비슷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보다 설득력을 얻고 있다.
실제로 두 사람 모두 퉁명스런 매너에 허세 부리기를 좋아하고 남성적인 ‘마초’ 이미지를 과시하려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특히 정적(政敵)이나 못마땅한 상대를 향해서는 ‘기가 약하다’거나 ‘힘과 정력이 부족하다’는 식으로 공격을 하는데 능숙하다는 얘기들이 나온다.
구소련 첩보조직인 KGB 출신인 푸틴은 격렬한 야외스포츠를 즐기는 것으로 유명하다.
푸틴은 2009년 총리 시절 웃통을 벗어 상반신 근육질의 몸매를 드러낸 채 울퉁불퉁한 산악지형을 말을 타고 가는 사진을 공개하기도 했다. 애완견과 함께 시베리아 호랑이도 기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푸틴이 이런 이미지를 드러내는 것은 일반적으로 매우 계산되고 통제된 상황에서 나온 것인 반면, 트럼프는 매우 즉흥적이라는 차이점은 있다.
트럼프는 지난 8월 대선 TV토론에서 송곳 질문을 던진 폭스뉴스의 여성 앵커를 향해 월경으로 예민해졌다고 암시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또 공화당의 유일한 여성 경선주자인 칼리 피오리나를 향해서는 “누가 저 얼굴에 투표하고 싶겠냐”는 막말을 퍼붓는 등 수시로 마초 성향을 드러내고 있다.
모스크바 카네기센터의 분석가 알렉산드르 바우노프는 “푸틴은 트럼프를 개인적으로 잘 알지 못하지만 그가 하는 행동과 말, 그를 면밀하게 지켜보면서 공감하고 있다”며 “트럼프가 다른 일반적인 서방의 정치인과는 다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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