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한 죽음을 말하다] 세가족 이야기
“편안하고 행복하게 남은 시간 보내고 싶어요”환자 마지막 소원 술상 차리고 깜짝 결혼식 까지
봉사자들 “내일은 없다는 생각으로 항상 최선”
![신경 속에 종양이 생기는 희귀병 투병 끝에 지난달 사망한 정유준(오른쪽)씨가 생전에 병원에서 어머니 권은주씨와 밝은 모습으로 찍은 사진.](https://img.seoul.co.kr/img/upload/2019/03/11/SSI_20190311172810_O2.jpg)
![신경 속에 종양이 생기는 희귀병 투병 끝에 지난달 사망한 정유준(오른쪽)씨가 생전에 병원에서 어머니 권은주씨와 밝은 모습으로 찍은 사진.](https://img.seoul.co.kr//img/upload/2019/03/11/SSI_20190311172810.jpg)
신경 속에 종양이 생기는 희귀병 투병 끝에 지난달 사망한 정유준(오른쪽)씨가 생전에 병원에서 어머니 권은주씨와 밝은 모습으로 찍은 사진.
“어머니, 두려우실 땐 지금 옆에 있는 자녀분들의 목소리를 기억하세요.”
지난 1월 21일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호스피스 완화의료센터의 한 병동. 봉사자가 임종을 앞둔 환자를 어루만지며 나지막이 속삭이자 환자 얼굴에 뜨거운 눈물이 흐른다. 눈조차 뜨지 못한 채 거친 숨만 몰아쉬는 순간에도 늙은 어미는 ‘자식’이란 말에 반응했다.
호스피스 병동은 마지막 정류장이다. 다양한 사연을 품은 승객이 이곳에 잠시 머물다 종착역으로 떠난다. 길을 떠나기 전 누군가는 의연하고, 누군가는 극도의 고독과 공포를 느끼지만 바람은 같다. 얼마 남지 않은 삶을 부디 평화롭게 마무리하길 빈다. 병동 의료진과 사회복지사, 자원봉사자들은 마지막 배웅을 돕는다.
![한 봉사자가 환자의 발마사지를 위해 쿠션과 수건, 아로마 오일 등을 챙기고 있다. 쉽게 손발이 붓는 환자를 위해 봉사자들은 하루에도 수차례 병실을 돌며 마사지를 한다. 박지환 기자 popocar@seoul.co.kr](https://img.seoul.co.kr/img/upload/2019/03/11/SSI_20190311172732_O2.jpg)
박지환 기자 popocar@seoul.co.kr
![한 봉사자가 환자의 발마사지를 위해 쿠션과 수건, 아로마 오일 등을 챙기고 있다. 쉽게 손발이 붓는 환자를 위해 봉사자들은 하루에도 수차례 병실을 돌며 마사지를 한다. 박지환 기자 popocar@seoul.co.kr](https://img.seoul.co.kr//img/upload/2019/03/11/SSI_20190311172732.jpg)
한 봉사자가 환자의 발마사지를 위해 쿠션과 수건, 아로마 오일 등을 챙기고 있다. 쉽게 손발이 붓는 환자를 위해 봉사자들은 하루에도 수차례 병실을 돌며 마사지를 한다.
박지환 기자 popocar@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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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피스 봉사 16년차인 예은주(58)씨는 “언제 이별할지 모르는 환자들에겐 ‘내일은 없다’는 생각으로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아버지와 회에 소주 한 잔 마시는 게 소원이라는 환자를 위해서 술상을 차린다든지, 병동에서 마련한 작은 결혼식의 사회자가 되기도 한다. 환자가 원하면 병동은 노래방이 되기도 한다. 트로트부터 랩까지 그저 목청 높여 부른다.
![같은 날 병실에서 자원봉사자들이 권씨가 평소에 좋아하는 성가를 부르고 있다. 권씨도 돋보기를 끼고 성가를 따라 부르는 모습이다. 박지환 기자 popocar@seoul.co.kr](https://img.seoul.co.kr/img/upload/2019/03/11/SSI_20190311172744_O2.jpg)
박지환 기자 popocar@seoul.co.kr
![같은 날 병실에서 자원봉사자들이 권씨가 평소에 좋아하는 성가를 부르고 있다. 권씨도 돋보기를 끼고 성가를 따라 부르는 모습이다. 박지환 기자 popocar@seoul.co.kr](https://img.seoul.co.kr//img/upload/2019/03/11/SSI_20190311172744.jpg)
같은 날 병실에서 자원봉사자들이 권씨가 평소에 좋아하는 성가를 부르고 있다. 권씨도 돋보기를 끼고 성가를 따라 부르는 모습이다.
박지환 기자 popocar@seoul.co.kr
박지환 기자 popocar@seoul.co.kr
“고통스러운 치료를 중단하고 편안하고 행복하게 남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뿐이에요.” 연명의료 중단을 결정하는 건 생각처럼 쉽지만은 않았다. 권씨는 2014년 12월에 난소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곧바로 수술에 이어 항암 치료까지 들어갔지만 차도가 없었다. 암 병동에 입원해 2차 항암 치료도 해 봤지만 몸이 버티질 못했다. 약에 취해 종일 늘어져 잠만 자야 했다. 이건 아니지 싶었다고 했다. 얼마 남지 않은 날이지만 맑은 정신으로 보내고 싶었다. 권씨는 지난 1월 18일 연명의료 계획서를 작성하고 호스피스 병동에 왔다.
“병동 식구들과 함께 노래하고, 꽃꽂이도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는 시간이 고맙고 즐거워요.”
물 한 모금조차 넘길 수 없는 몸이지만 표정만은 밝다. 이날 미술치료에서 권씨는 난생처음 종이로 복주머니를 접었다. “누구에게 주고 싶냐”는 질문에 권씨는 “임신한 첫째 며느리에게 줄 선물”이라고 잠시 말을 멈춘다.
![지난 1월 25일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에서 간병인 김진옥씨가 말기암으로 투병 중인 권진숙(오른쪽) 환자의 손을 꼭 잡고 호스피스 병동을 거닐고 있다. 간병인과 환자로 만난 두 사람은 동갑내기로 친구가 됐다. 박지환 기자 popocar@seoul.co.kr](https://img.seoul.co.kr/img/upload/2019/03/11/SSI_20190311172718_O2.jpg)
박지환 기자 popocar@seoul.co.kr
![지난 1월 25일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에서 간병인 김진옥씨가 말기암으로 투병 중인 권진숙(오른쪽) 환자의 손을 꼭 잡고 호스피스 병동을 거닐고 있다. 간병인과 환자로 만난 두 사람은 동갑내기로 친구가 됐다. 박지환 기자 popocar@seoul.co.kr](https://img.seoul.co.kr//img/upload/2019/03/11/SSI_20190311172718.jpg)
지난 1월 25일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에서 간병인 김진옥씨가 말기암으로 투병 중인 권진숙(오른쪽) 환자의 손을 꼭 잡고 호스피스 병동을 거닐고 있다. 간병인과 환자로 만난 두 사람은 동갑내기로 친구가 됐다.
박지환 기자 popocar@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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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씨는 웃으며 퇴근 후에 찾아올 아들을 기다렸다.
위로받아야 하는 이는 환자뿐만이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 가는 모습을 고스란히 지켜봐야 하는 가족의 가슴은 말 그대로 찢어진다. 호스피스에선 보호자들의 심리 상태도 늘 예의주시한다. 이 때문에 보호자들은 피교육자임과 동시에 모니터링 대상자다.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고통스러워하는 경우엔 환자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심리상담을 제공하기도 한다.
“딸기를 너무 먹고 싶어 하는데 그거 한 입을 줄 수 없다는 게 가슴이 미어져요. 평생 한이 될 것 같아요”
24일 보호자 교육에서 만난 정유준(25)씨의 어머니 권은주(52)씨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다. 이날은 임종기 환자에게 보호자가 어떤 역할을 해 줘야 하는지를 교육하는 자리. 아들에게 먹을 것을 주면 안 된다는 건 이미 어머니도 잘 알고 있었다. 다만 말을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다. 간호사는 “충분한 포도당을 투여하니까 절대 굶기는 게 아니에요”라고 권씨를 꼬옥 안아 줬다.
초등학교 교사를 꿈꾸던 아들 유준이는 2013년 교대에 입학했다. 하지만 같은 해 신경 속에 종양이 생기는 희귀병이 찾아왔다. 암 덩어리를 일년에 한 번꼴로 잘라 내야 했다. “차라리 날 데려가 달라”고 기도했다. 아들을 품고 5년간 문이 닳도록 병원을 오갔지만 야속하게도 암은 너무 빠르게 아들을 삼켰다. 이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을 떠나보내야 한다.
![정씨가 5년 6개월이란 긴 투병 기간 중에 쓴 시집 ‘내가 널 기억할게’. 아들은 ‘서로에게 서로가 없었다면 견뎌 내지 못했을 시간들이었다’라는 시구(詩句)를 통해 어머니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시집은 아들이 건넨 마지막 크리스마스 선물이 됐다. 박지환 기자 popocar@seoul.co.kr](https://img.seoul.co.kr/img/upload/2019/03/11/SSI_20190311172828_O2.jpg)
박지환 기자 popocar@seoul.co.kr
![정씨가 5년 6개월이란 긴 투병 기간 중에 쓴 시집 ‘내가 널 기억할게’. 아들은 ‘서로에게 서로가 없었다면 견뎌 내지 못했을 시간들이었다’라는 시구(詩句)를 통해 어머니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시집은 아들이 건넨 마지막 크리스마스 선물이 됐다. 박지환 기자 popocar@seoul.co.kr](https://img.seoul.co.kr//img/upload/2019/03/11/SSI_20190311172828.jpg)
정씨가 5년 6개월이란 긴 투병 기간 중에 쓴 시집 ‘내가 널 기억할게’. 아들은 ‘서로에게 서로가 없었다면 견뎌 내지 못했을 시간들이었다’라는 시구(詩句)를 통해 어머니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시집은 아들이 건넨 마지막 크리스마스 선물이 됐다.
박지환 기자 popocar@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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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피스에 가겠다고 말한 것도 아들이다. 떠날 시간이란 걸 직감한 듯했다. 통곡하는 엄마의 눈물을 닦아 줬다. 호스피스 병동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돼 유준이의 상태는 안 좋아졌다. 권씨는 “잠시 집안일을 보고 오니 갑자기 유준이 목소리가 안 나오기 시작했다”면서 “좀더 옆에 있어 줄 걸 하는 후회가 든다”고 말했다. 하지만 목소리를 잃은 그날도 유준이는 웃었다. 참기 어려운 통증 속에서도 손짓과 입모양으로 늘 어머니와 주변을 향해 감사 인사를 전했다.
이제 유준이는 이 세상에 없다. 취재진이 병동을 떠난 뒤 얼마 못 돼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어머니에게 안부전화를 걸었다. 수화기 너머 권씨의 목소리가 들렸다. “투병 기간 내내 유준이가 고생했는데 마지막 시간이나마 통증을 조절하며 떠날 수 있게 된 걸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편안한 이별을 선물해 준 병동 식구들에게 감사해요. 도움을 받았으니 저도 받은 만큼 봉사할 계획이에요.”
![1월 21일 말기암으로 투병 중인 김순례(오른쪽)씨가 호스피스 병동에서 첫째 아들 조희성씨 내외와 함께 찍은 사진. 미국에 사는 조씨는 어머니가 아프다는 소식에 한국에 달려왔다. 박지환 기자 popocar@seoul.co.kr](https://img.seoul.co.kr/img/upload/2019/03/11/SSI_20190311172838_O2.jpg)
박지환 기자 popocar@seoul.co.kr
![1월 21일 말기암으로 투병 중인 김순례(오른쪽)씨가 호스피스 병동에서 첫째 아들 조희성씨 내외와 함께 찍은 사진. 미국에 사는 조씨는 어머니가 아프다는 소식에 한국에 달려왔다. 박지환 기자 popocar@seoul.co.kr](https://img.seoul.co.kr//img/upload/2019/03/11/SSI_20190311172838.jpg)
1월 21일 말기암으로 투병 중인 김순례(오른쪽)씨가 호스피스 병동에서 첫째 아들 조희성씨 내외와 함께 찍은 사진. 미국에 사는 조씨는 어머니가 아프다는 소식에 한국에 달려왔다.
박지환 기자 popocar@seoul.co.kr
박지환 기자 popocar@seoul.co.kr
김씨의 큰아들 조희성(56)씨는 어머니가 아프시다는 소식에 미국 시애틀에서 달려왔다.
“어머니는 자식을 위해 악착같이 사신 분이세요. 어렵게 생계를 이어 갈 때도 본업에 부업까지 하면서 자식들을 과외까지 시키셨어요. 그 덕에 제가 이렇게 살고 있는데···혹시나 임종도 지키지 못할까 봐 가슴이 미어집니다.”
조씨는 먹고사는 일 때문에 일주일 뒤 미국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대신 조씨의 아내가 남아 어머니를 돌본다.
한 달 뒤 조씨는 미국에서 취재진에게 애타는 마음을 전해 왔다. 당시 통증 완화치료 후 퇴원했던 김씨는 지난주 다시 입원한 상태다. 통증이 잡히지 않아 고통받고 있다. 미국에서 어머니의 상태를 전해 들을 수밖에 없는 조씨는 하루하루 마음이 무너져 내린다.
“통증으로 고통이 심하시다고 하네요. 그래도 며느리들과 기도하실 때 제일 편안해하신답니다. 어차피 가셔야 한다면 고통 없이 천국으로 가셨으면 해요. 가장 큰 바람입니다.”
이혜리 기자 hyerily@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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