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서 ‘위수동’, ‘친지동’이란 말이 자주 입에 오르내렸던 적이 있었다. 주사파들이 운동권 헤게모니를 쥔 1980년대 후반 무렵이다. ‘위수동’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를 줄인 말이고, ‘친지동’은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동지’의 축약어다. 줄이기 전엔 김 부자에 대한 북측의 찬양의 뜻이 담겼을 게다. 반면 줄임말들은 북측의 우상화 놀음을 추종하는 남쪽 주사파를 겨냥한다. 그런 개인숭배 동조자에 대한 비아냥이란 말이다.
‘위수동’의 주인공이 고 김일성 주석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 바뀌었다는 증언이 나왔다. 그제 ‘미국의 소리(VOA)’는 최근 방북했던 기독교선교단체 ‘오픈 도어즈’ 관계자의 말을 인용, “방북 기간 중 관찰해 봤더니, 과거 김일성을 가리켰던 ‘위대한 수령’이란 호칭을 김정일에게 썼다.”고 보도했다. 지난 6월까지만 해도 북한 주민과 안내원들이 김일성은 ‘위대한 수령’으로, 김정일은 ‘친애하는 지도자’로 구분해 호칭했다고 전제하면서다.
북한 당대표자회의 개최 여부가 주목되는 가운데 이 보도가 나와 관심을 끈다. 3대 세습 정지작업의 수위를 짐작하게 하는 까닭이다. 보도대로라면 ‘친애하는 지도자’란 호칭은 이제 3대 후계자 김정은의 몫임을 시사한다. 김일성 주석을 ‘영원한 주석’으로 바꿔 불렀다는 보도도 세습의 진전 징후다. 북한은 1994년 김 주석이 사망한 후 1998년 헌법개정으로 주석직을 폐지한 바 있다. 프로야구 대스타의 등번호처럼 영구결번으로 남겨놓았던 주석직을 김일성에게 다시 ‘헌정’한 꼴이다. 대신 김정일을 ‘위대한 수령’으로, 김정은을 ‘친애하는 지도자’로 한 단계씩 올려 세습의 정통성을 강변하려는 의도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런 호칭들은 모국어를 오염시키는 낯간지러운 헌사일 뿐이지만, 그 이상의 안타까운 정치적 함의도 담고 있다. 무엇보다 북한체제가 단시일 내에 개혁·개방이란 세계문명사의 큰 흐름를 타기 어렵다는 징표라는 점이다. 권력의 혈연적 승계는 봉건성의 강화로, 시대착오일 뿐이다. 러시아처럼 시장경제로의 대변화와도, 중국과 같은 사회주의 시장경제로의 진화와도 무관하다는 얘기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3대 권력세습이 어떤 형태로, 언제쯤 완결될지를 점치기란 어렵다. 왕정이 아닌 ‘공화국(共和國)’에선 유례가 없는 탓이다. 분명한 것은 세습 성공이 곧 체제의 안착을 보장하진 않는다는 사실이다. 북 지도부는 개혁·개방만이 고사 직전의 체제를 살리는 외길임을 깨달아야 한다.
구본영 수석논설위원 kby7@seoul.co.kr
‘위수동’의 주인공이 고 김일성 주석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 바뀌었다는 증언이 나왔다. 그제 ‘미국의 소리(VOA)’는 최근 방북했던 기독교선교단체 ‘오픈 도어즈’ 관계자의 말을 인용, “방북 기간 중 관찰해 봤더니, 과거 김일성을 가리켰던 ‘위대한 수령’이란 호칭을 김정일에게 썼다.”고 보도했다. 지난 6월까지만 해도 북한 주민과 안내원들이 김일성은 ‘위대한 수령’으로, 김정일은 ‘친애하는 지도자’로 구분해 호칭했다고 전제하면서다.
북한 당대표자회의 개최 여부가 주목되는 가운데 이 보도가 나와 관심을 끈다. 3대 세습 정지작업의 수위를 짐작하게 하는 까닭이다. 보도대로라면 ‘친애하는 지도자’란 호칭은 이제 3대 후계자 김정은의 몫임을 시사한다. 김일성 주석을 ‘영원한 주석’으로 바꿔 불렀다는 보도도 세습의 진전 징후다. 북한은 1994년 김 주석이 사망한 후 1998년 헌법개정으로 주석직을 폐지한 바 있다. 프로야구 대스타의 등번호처럼 영구결번으로 남겨놓았던 주석직을 김일성에게 다시 ‘헌정’한 꼴이다. 대신 김정일을 ‘위대한 수령’으로, 김정은을 ‘친애하는 지도자’로 한 단계씩 올려 세습의 정통성을 강변하려는 의도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런 호칭들은 모국어를 오염시키는 낯간지러운 헌사일 뿐이지만, 그 이상의 안타까운 정치적 함의도 담고 있다. 무엇보다 북한체제가 단시일 내에 개혁·개방이란 세계문명사의 큰 흐름를 타기 어렵다는 징표라는 점이다. 권력의 혈연적 승계는 봉건성의 강화로, 시대착오일 뿐이다. 러시아처럼 시장경제로의 대변화와도, 중국과 같은 사회주의 시장경제로의 진화와도 무관하다는 얘기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3대 권력세습이 어떤 형태로, 언제쯤 완결될지를 점치기란 어렵다. 왕정이 아닌 ‘공화국(共和國)’에선 유례가 없는 탓이다. 분명한 것은 세습 성공이 곧 체제의 안착을 보장하진 않는다는 사실이다. 북 지도부는 개혁·개방만이 고사 직전의 체제를 살리는 외길임을 깨달아야 한다.
구본영 수석논설위원 kby7@seoul.co.kr
2010-09-16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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