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교포 출신 국악인…2011년 발표 ‘가시리’ 주제곡으로 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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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조금 위인 소녀 분숙은 같은 처지의 소녀들이 노래를 청하자 낭랑한 목청으로 한 곡조를 뽑는다.
‘가시리 가시리잇고/ 버리고 가시리잇고/ 날 더러 어찌 살라고/ 버리고 가시리잇고/ 나는~’
구성진 노래 한 자락은 지옥 같은 삶을 사는 소녀들의 얼굴에 엷은 미소를 피운다.
영화 ‘귀향’에서 소녀들의 상처를 잠시나마 보듬어준 이 노래는 우리의 전통 음악 ‘가시리’이다. 영화 주제곡으로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기 전 소녀들의 영혼을 상징하듯 나비가 날아오르는 장면에서도 흘러나온다.
이 목소리의 주인공은 중국 교포 출신 국악인 은희지(본명 김은희·39)이다. 그가 2011년 발표한 싱글 음반 ‘가시리’를 접한 제작진이 음원 사용을 요청했고 은희진은 아무 대가 없이 수락했다. 소녀의 목소리 톤에 맞추고자 일부분을 재녹음하는 정성도 보였다.
은희진은 3일 연합뉴스와 가진 전화 인터뷰에서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영화에 제가 부른 ‘가시리’가 담긴 것은 음악 인생에서 가장 의미 있는 일일 것 같다”며 “그 어떤 화려한 무대보다 뜻깊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위안부 피해 여성 20만 명을 위해 제 노래가 조그마한 역할이라도 했다면 정말 행복한 음악 인생이라고 생각한다”며 “자랑스럽기도 하고 노래를 사용해준 조정래 감독님께도 감사하다”고 했다.
그는 지난해 3월부터 중국 선전(深천<土+川>)에 머물고 있다. 서울시청 공무원인 남편이 이 곳으로 연수를 왔기 때문이다. 그래도 지난달 한국에 잠시 건너와 ‘귀향’을 관람했다.
“멍하고 기가 막히고 그랬어요. 얼마나 아프고 무서웠을까요. 영화를 본 감정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죠.”
조정래 감독이 전화를 걸어온 건 지난해 말이었다.
그는 “위안부 피해 여성들을 위한 영화를 찍는다고 하시면서 대본을 보내주셨다”며 “어린 시절 중국에서 자라며 할아버지로부터 한국과 중국이 역사적으로 일본에 고통당한 게 많다는 얘기를 들었던 터라 흔쾌히 무료로 쓰시라고 했다”고 전했다.
은희지는 중국 옌볜(延邊)예술대학 민족성악과에서 북한 민요와 중국 민가를 전공했다. 2003년 한국으로 건너와 중앙대학교 음대에서 석사 과정을 밟았다. 결혼하면서 한국에 정착했고 2012년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2005년 중국 교포 연주자들로 이뤄진 국악팀 ‘아리랑 낭낭’으로 앨범을 냈고, 솔로 음반은 ‘가시리’가 처음이었다.
그는 “블로그에 보니 어떤 분은 소녀의 예쁜 목소리라던데 소녀 아니고 결혼해서 아이가 둘 있는 아줌마”라고 웃었다.
그가 부른 ‘가시리’는 작자·연대 미상의 고려가요의 노랫말에 국립국악원 창작악단 예술감독인 류형선 씨가 새로운 멜로디를 붙이고 편곡해 완성했다.
“류형선 감독님의 곡을 좋아해 제 목소리에 맞는 노래를 내고 싶다고 부탁했어요. ‘가시리’는 한국 사람들이 교과서에서 의무적으로 배워 노랫말이 귀에 익을 것 같았고요. 1년간 작업한 곡이죠.”
그는 “‘귀향’은 무려 14년이 걸려 개봉한 영화인데 관객의 호응이 크다고 하니 기쁘다”며 “덩달아 ‘가시리’에 대한 반응도 많이 올라와 너무 감사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귀향’은 관객 200만 명 돌파를 목전에 뒀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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