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세에 선 그은 朴 대통령
9일 박근혜 대통령이 내놓은 사실상 ‘증세 불가’ 언급은 경제활성화를 통해 세수를 확충하면 증세 없이도 복지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지하경제 양성화와 세출 구조조정, 비과세 감면 축소 등 세수 확보 대책을 ‘현재진행형’으로 간주하고 있다. 결국 국정 운영의 핵심 기조인 ‘증세 없는 복지’를 수정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집권 중반기에 민심 이반을 불러올 증세 카드를 꺼내 들면 정권 기반이 취약해질 수 있다는 점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박근혜 대통령이 9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최근 논란이 되는 증세 문제와 관련해 ‘증세 불가론’을 거듭 밝히고 있다. 안주영 기자 jya@seoul.co.kr](https://img.seoul.co.kr/img/upload/2015/02/09/SSI_20150209172228_O2.jpg)
안주영 기자 jya@seoul.co.kr
![박근혜 대통령이 9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최근 논란이 되는 증세 문제와 관련해 ‘증세 불가론’을 거듭 밝히고 있다. 안주영 기자 jya@seoul.co.kr](https://img.seoul.co.kr//img/upload/2015/02/09/SSI_20150209172228.jpg)
박근혜 대통령이 9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최근 논란이 되는 증세 문제와 관련해 ‘증세 불가론’을 거듭 밝히고 있다.
안주영 기자 jya@seoul.co.kr
안주영 기자 jya@seoul.co.kr
여기에는 세수 증대라는 ‘어려운 길’ 대신 증세라는 ‘쉬운 길’을 택하려는 정치권에 대한 비판 의식도 깔려 있다. 박 대통령이 이날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정치권을 겨냥해 “과연 국민에게 부담을 더 드리기 전에 우리가 할 도리를 다 했느냐”, “국민을 배신하는 것 아니냐” 등 강한 어조로 비판한 배경이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박 대통령은 “관련 논의들이 국회에서 국민을 중심에 두고 이뤄지면 정부도 이에 대해 함께 검토해 나갈 것”이라며 ‘국회 논의’를 최우선함으로써 정치권과의 충돌은 피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이는 앞서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국회에 출석해 “국회가 합의하면 증세 논의도 가능하다. 증세는 최후의 카드”라고 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새누리당도 증세가 우선적 고려 대상은 아니라는 쪽으로 의견이 정리되는 중이다. “증세 논의 자체를 막을 수는 없다”면서도 법인세 인상을 최후의 수단으로 보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현 정부의 재정 수준이 복지 재원을 감당할 수 없다는 고민을 갖고 있는 여당은 복지사업 구조조정 문제부터 고려할 수도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상황 인식은 이와는 180도 다르다. 복지 재원 확보를 위한 박 대통령의 전제 자체가 잘못됐다고 보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세수 결손 문제를 ‘노력해서 바뀔’ 게 아니라, ‘노력해도 안 되는’ 상황으로 간주하고 있다. 이미 담뱃세 인상과 연말정산 방식 변경 등을 통해 ‘꼼수 증세’가 이뤄진 데다 경제활성화를 이유로 법인세 인상 논의만 금기시하는 것은 조세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시각을 갖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증세 없는 복지가 모두 거짓임이 드러났다”며 “법인세를 정상화하는 등 부자 감세 철회를 뚫고 나갈 것”이라고 ‘증세 불가피론’을 앞세웠다. 따라서 문 대표가 향후 법인세 인상 문제를 중심에 놓고 박 대통령과 각을 세울 가능성이 크다.
결국 증세 없는 복지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박 대통령과 정부, 법인세 인상론을 펴는 야당, 복지 구조조정에 초점을 맞추는 여당의 ‘헤게모니 쟁탈전’이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여·야·정이 인식의 차를 좁히지 못하면 논쟁이 장기전으로 흐를 수 있고, 국정 운영과 여야 관계를 경색시키는 복병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장세훈 기자 shjang@seoul.co.kr
2015-02-10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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